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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에 필요한 것은...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85

by 태화강고래

설레는 그날의 연휴 첫날.


아침부터 혼자 분주했다. 손님을 맞이하는 주인의 자세로.

남동생이 엄마를 집에 모시고 오기로 했기에 머리에 써놓은 계획을 몸으로 이행했다. 일단 집에서 1km 정도 떨어진 떡집으로 찬바람을 맞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 떡집에만 엄마가 좋아하는 완두배기팥시루떡과 모시송편이 있다. 떡집 앞에는 명절 때마다 그렇듯이 떡국떡이 쌓여있고, 가게 안팎에는 주부들이 들락거렸다. 득탬이나 한 듯, 기분 좋게 원하는 떡을 사들고 집으로 향했다. 숨을 돌려 시금치를 다듬어 삶고 무쳤다. 어제 재어놓은 불고기를 약한 불에 올려 볶기 시작할 때 전화벨이 울렸다.


"차가 안 막혀서 30분 정도 있다 도착할 거 같아."


동생의 말에 갑자기 2배나 더 바빠졌다. 아직 준비가 안 끝났는데...


그렇게 잠시 후 엄마와 동생이 도착했다. 엄마는 며칠 전 병원에서 만났어도 집이라는 공간에서 만나니 색다르게 반가웠다. 추석 이후 본 동생도 반갑기는 마찬가지였다.


"떡국 이제 끓일게."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동생은 팔을 걷어 부치고 소금물에 담가둔 굴을 씻기 시작했다. 사실, 엄마가 좋아하는 매생이 굴떡국은 동생이 잘 끓인다. 지원부대가 나타나 은근히 마음이 놓이면서 동생에게 자연스럽게 패스했다. 담가둔 떡도 씻고, 매생이도 풀면서 동생은 숙련된 솜씨로 떡국을 끓여냈다.

굴떡국은 몇 번 먹어봤지만, 매생이까지 들어간 떡국은 처음인지라 아이들이 궁금해했다.


"이 떡국은 왜 초록색이지? 처음 보는데..."

"삼촌표 매생이 굴떡국이지. 먹어봐."

"맛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집집마다 떡국도 다양하게 만들어.

오늘은 낯선 매생이 굴떡국, 내일 할머니댁 가서는 그냥 떡국 먹으면 돼."


솔직하게 음식맛을 평가하는 아이들 앞에서 어른들은 남동생이 애써 끓여낸 뜨끈한 떡국을 감사히 잘 먹었다. 상다리가 부러질 듯 명절 음식으로 가득한 상차림이 아니었다. 음식보다는 가족의 정이 전부였다. 이전 글에서 고백했듯이, 음식솜씨가 부족한 내가 만든 불고기와 나물무침 몇 가지, 그리고 엄마를 모시고 온 동생이 끓인 떡국, 과일과 떡이 전부였다. 워낙 입이 짧아 많이 드시지 않으니 크게 준비할 것도 없다는 엄마 말씀을 너무 잘 들었나 싶을 정도였다.


온종일 기름 냄새를 맡고 동태 전, 산적, 꼬치 전, 동그랑땡을 부치고 차례상을 차렸어도 정작 가장 가까운 남편에게서 "수고했네, 고맙네"라는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던 엄마는 그 시절을 회상하며 눈시울을 적셨다. 외며느리의 수고에 감사하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아줬으면 그렇게나 힘들고 외롭지 않았을 거 같다고. 돌아가신 조상에게 보여주는 명절음식이 중요한 게 아니고 가족이 함께하고, 곁에 있는 가족을 보듬어 주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빠에게 진작 말하지 못했던 자신을 후회하고 계셨다. 오늘 우리 남매가 차린 상을 마주하고는 항상 그렇듯이 "고맙다, " "수고했다"는 말을 아낌없이 나눠주셨다. 손님을 대하는 자세로, 빈틈없이 가족은 대하지 않아도 된다. 부족해도 말없이 채워줄 수 있는 마음과 행동, 그리고 준비하는 마음과 그 마음을 받아들여주는 마음이 서로 통하면 평안한 명절을 보낼 수 있다. 말없이 일어나서 설거지를 하는 남편에게 나도 엄마도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함께 한 모두가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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