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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파크" 멍을 했다?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90

by 태화강고래 Feb 15. 2024

물멍이라는 말이 있다.

물을 보며 멍하게 있는 상태라는 신조어이다. 모닥불을 보며 멍 때린다는 불멍과 함께 바쁜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이 잠시라도 마음의 평온을 찾는데 도움을 주기에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라고 한다. 기밖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 파도치는 바다를 보는 것, 주룩주룩 내리는 비 소리를 들으며 멍 때리는 것도 잠시 휴식을 취하는 행동이다. 생각해 보니 나는 멍하니 차창이나 카페 유리창을 통해 밖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15분 정도의 멍 때리기는 뇌에 휴식을 제공해서 기억력과 학습력을 향상해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을 키워주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https://pjy791009.tistory.com/428


멍하니, 멍 때리는 행위가 적절하게 행해진다면 뇌휴식에 도움이 된다니 그동안 습관으로 자리 잡은 멍 때리기가 아주 쓸모없는 시간 낭비는 아니었나 싶어 다행스럽기까지 하다.


지난 양양 여행 때의 일이다. 5년 만에 워터파크에서 멍 때리기를 했다. 

2018년. 물놀이에 흠뻑 빠진 6살, 8살 아이들과 캐리비안베이와 원마운트를 다니며 여름을 바삐 보냈다. 

워터파크를 즐기는 편은 아니었지만 자식덕에 뒤늦게 물놀이에 빠졌다. 20대에는 수영복을 입고 몸을 드러내는 게 부담스러워 안 갔고 30대 중반 결혼 후부터 다니기 시작했다. 


2019년. 암 진단 후 5년 만에 용기를 냈다. 물놀이 노래를 부르는 딸을 위해 큰맘 먹고 리조트 내 워터파크에 들어갔다. 탈의실에 사람들이 별로 없어도 딸에게조차 수술한 내 가슴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뒤돌아서서 보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뒤 재빨리 탈의하고 수영복을 입었다. 거울에 비친 나는, 수영복으로 가렸기에 예전의 모습이 아직 남아 있는 듯했다. 설레는 딸과 약간 긴장한 나는 손을 잡고 입장했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아이들이 놀기에 적당한 실내워터파크를 보자마자 딸은 지체 없이 물속으로 들어갔다. 나에게 손짓했지만 선뜻 들어가지 않고 잠시 지켜봤다. 아들이 오지 않아 혼자 노는 딸이 안쓰러워 맘을 고쳐먹고 발부터 담그기 시작했다. 곧 수술 후 5년이 되니 물에 들어가도 문제 될 게 없을 텐데 자신이 없었다. 수술한 가슴이 공중목욕탕 같은 물속에 들어가도 될지, 아직 재건수술이 끝나지 않았는데 괜찮을지... 그렇게 망설이던 끝에 깊이 안 들어가는 걸로 타협하고 딸 옆에 가서 지켜보기로 했다. 혼자보단 엄마가 자신을 봐준다는 게 흥을 돋웠는지 딸은 구명조끼에 의지해 물에 떠서 발짓 손짓 애쓰며 좋아라 했다. 몇 초 동안 잠수할 수 있는지 초를 재며 물속을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했다. 활발하게 동심으로 돌아가 물놀이를 할 만큼 내키지 않아 미안했다. 그저 간간이 사진을 찍어주며 멍하니 바라봤다. 그렇게 딸과 물을 번갈아 바라보며 물속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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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엄마 때문에, 코로나 때문에 오래 참은 딸이 고마웠다. 때를 놓친 건 아닌지, 지금이라도 다시 오게 돼서, 나도 수영복이라는 것을 다시 입을 수 있어, 그저 다행이었다. 멍 때리는 듯하면서도 이생각저생각에 생각만큼 머리를 비우는 시간은 날 찾아오지 않았다. 과연 내가 한 게 제대로 된 멍 때리기였을까? 그랬다면, 멍 때리기가 뇌에게 휴식을 주었을까? 겉으로 볼 때만 멍하니 있고, 딴생각으로 가득 차 있던 건 아니었을까?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다음 기사를 찾았다. 

https://kormedi.com/1636604/%ec%95%84%eb%ac%b4-%ec%83%9d%ea%b0%81%ed%95%98%ec%a7%80%eb%a7%88-%eb%87%8c%eb%8a%94-%eb%a9%8d-%eb%95%8c%eb%a6%b4-%ec%88%98-%ec%9e%88%eb%8b%a4-vs-%ec%97%86%eb%8b%a4/


이 기사에 따르면, 뇌는 ‘생각이 없는 백지상태’는 불가하지만 ‘잡생각이 덜한 상태’를 의도할 수는 있다고 한다. 명상을 통해 뇌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여러 연구 결과들에서 유래한 것으로 ‘멍 때리다’는 ‘짧은 명상’이라 이해하는 것이 맞다고 한다. 


"명상과 수면이 아닌, 우리가 의도하고자 하는 생활 속 ‘멍 때리기’는 역설적으로 ‘딴생각하기’에 가까워. 어떤 일을 하던 중 그 일과는 관련이 없는 뇌의 딴생각이나 잡생각을 자연스럽게 일어나도록 두는 것, 이것이 오히려 뇌 과학에서 의미하는 ‘멍 때리기’라는 것이 아닐까."




그럼, 내가 한 건 "딴생각하기"에 가까웠던 것 같다. 생각이 없는 백지상태가 아니라 내 처지와 딸을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자연스럽게 뇌는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워터파크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과거, 현재, 미래까지 대충이라도, 생각이란 걸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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