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못 생겨도 맛은 좋아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88

by 태화강고래

명절 끝 일상 복귀.


명절의 여운을 느끼게 해 주는 음식이 눈앞에 있다. 내 손으로 직접 만든 음식이 아닌, 매번 시댁에서 받아오는 몇 가지로 편히 상을 차린다. 이번 설에는 양념 소갈빗살, 동태 전, 도토리묵을 싸 주셨다. 도토리묵을 칼로 먹기 좋게 자르면서 혼자 피식 웃는다.


도토리묵은 나만 먹는다. 도토리 젤리라고 이야기하며 아이들에게 권해보지만, 단칼에 거절당한다.

혼자만 먹는 게 대부분이고, 혼자만 안 먹는 것도 꽤 된다.


지난 설, 어머니는 도토리묵을 쑤기 위해 냄비에 가루를 푸셨다. 옆에 서 있다 용기를 냈다.


"제가 해 볼게요."

"네가 가져갈 거니 한번 해봐. 계속 저으면 돼."


젓는 게 쉬운 게 아니다. 이미 알고 있었다. 동생도 여러 번 "도토리묵 해 먹어봐. 쉬워."라고 했어도 안 쉬울 걸 알았다. 그래서 선뜻 나서지 않고 속으로 망설이고 있었다. 유방암 2기 림프절 전이로 오른팔이 자유롭지 못했고, 지금도 최대한 조심해서 사용한다. 부종이 생길까 봐 반복적인 행위를 최대한 줄이고 무거운 물건을 들지 않는다. 그런 오른팔로 도토리묵을 만들기 위해 계속 저을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해 봤다.

역시나 몇 번 젓지 않아 팔이 아프기 시작했다. 살살, 그래도 딴에는 저었는데, 슬슬 굳으면서 질퍽한 게 갯벌에 발이 빠진 느낌이랄까.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앗... 아프다.

속도가 느려진 나를 보시더니 얼른 주걱을 잡고 휙휙 팍팍 휙휙 저으신다. 바닥까지 쓱쓱 안 저어서 이미 가루는 몽글몽글 엉겨있었다.


"빨리 힘 있게 저어야 하는데. 위에만 살살 저어서 안 이쁘게 되겠어."

"죄송해요. 팔이 아파서. 팔 아프신데 천천히 하세요. 제가 먹을 거니..."


그리고 얼른 지원군을 부엌으로 데리고 왔다. 힘센 남자 팔 힘이 나을 거 같아 특단의 조치로 얼떨결에 끌려온 남편도 놀라며 생전 처음 젓기 시작했다. 옆에서 아들을 지켜보던 어머니는 웃기만 하셨다. 그렇게 지원군이 가고 어머니의 마지막 손길을 받고 나서도 도토리묵의 외모는 별반 차이가 없었다. (한 방향으로 저어야 한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매끈하니 먹음직스러워야 하는데... 어쩌나. 이것 봐라."


오전에 만들어 놓으신 도토리묵과 비교하며 말씀하셨다.


"그럴 수도 있죠. 제가 먹을 거니 신경 쓰지 마세요. 못생긴 도토리묵이네요."


내가 먹을 거라 괜찮았다. 보기에 민망해도 맛은, 영양은 변함없으니까. 모과는 과일 중에서 못생긴 걸로, 아귀는 생선 중 못생긴 걸로 유명하다. 내가 처음 만들어본 도토리묵도 울퉁불퉁 참... 못 생 겼 다. 매끈하고 탱글탱글한 비주얼이 사라졌다. 통에 넣으니 된장 같기도 했다.


예전에 엄마의 도토리묵을 즐겨 먹었다. 이제는 어머니의 도토리묵으로 이어진 듯한 그 사랑이 못생기든, 잘생기든 좋아한다. 담백하면서도 쌉쌀한 맛이 좋다. 양념장을 즐기지 않아 김치에 싸서 먹는 게 좋다. 한식을 좋아하나 아쉽게도 손이 많이 가는 게 대부분이라 가까이하기엔 참~먼 음식이다. 아무리 어머니가 음식을 잘 못 하신다고 하셔도 내 눈에는 그래도 나보단 나은 어른임에는 틀림없다. 못하는 음식이라 해도 자식에게 해 줄 수 있을 때가 행복이라는 엄마의 말도 떠오른다. 훗날 난, 내 자식들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못생긴 도토리묵(부끄럽지만 공개합니다^^)




<도토리묵의 효능>

1. 해독작용

도토리의 아콘산이 독소, 불순물, 중금속 배출에 효과적

2. 혈관건강

타닌성분이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 낮추고,

칼륨성분이 나트륨과 노폐물 배출에 도움

3. 지혈작용

타닌성분이 지혈작용에 도움

4. 노화방지

활성산소 제거, 손상된 세포 재생에 도움

5. 다이어트

저열량, 식이섬유 풍부

따듯한 성질로 생리통 같은 여성질환 예방 및 개선


* 단, 지나친 섭취는 변비증상 유발


KakaoTalk_Snapshot_20240213_160746.png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235658&cid=40942&categoryId=32109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