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후에

중요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by 태화강고래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다. 보통은 일이 잘못된 이후에 손을 써봐야 소용없거나 너무 늦은 후회를 비판하는데 쓰인다. 그런데 요새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아 쓰인다고 하니 반가운 마음에 이 속담을 시작으로 글을 써 본다. 소 잃고라도 외양간을 고치면 다음에 일어날 일을 방지할 수 있다고 확대해석하는 방식이다. 맞다. 나도 동감한다. 병나기 전에 살피고 대비하면 좋으련만, 현실적인 여러 가지 이유로 대비를 못할 수도 있고, 혹은 대비한다고 병이 나를 알아서 비켜가지 않을 때도 있으니까. 그래서 내 결론은 소를 잃고 난 후라도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는 것. 사건 발생 전과 후는 다르며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몸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보통은 과학 시간에 배운 얕은 지식으로 그냥 살아갈 거 같다. 개인의 관심도에 따라 지식의 깊이와 범위는 다를 테지만. 나도 그런 보통 사람 중의 하나였다. 특별히 아픈 데 없이 잘 자란 편이라 건강에 대한 염려나 관심이 없었다. 부모님이 고혈압과 당뇨로 약 드시는 것을 지켜보았을 뿐이다. 성인이 되고 나서 건강검진을 통해 건강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이라 두통약을 챙겨 다니고, 생리 전 후 월경증후군을 겪고, 만성피로에 시달렸지만 건강검진결과에서 특이점은 없었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지금 실천하는 것을 그때 알았다면... 어땠을까? 아프기 전의 나는,

1. 운동을 안 했다. 체육시간 1시간보다 공부 3시간을 선호하고, 체육점수 1점이 부족해 중학교 3년 우등상을 놓칠 정도로 난 체육을 못하고 그래서 싫어했다. 요양병원에 계신 친정엄마, 육아, 직장생활로 매일 피곤했고 주말에는 주말대로 부모역할과 자식역할을 하느라 바빴다. 운동이라고는 버스 2-3 정거장쯤 걸어 다니는 정도로 걷기만 했다. 그나마 걷기를 좋아해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녔다.

2. 인스턴트식품은 예나 지금이나 선호하지 않는다. 햄버거, 피자, 라면, 튀김음식 등 건강하지 않다고 의사들이 피해야 한다고 말하는 음식은 자주 먹지 않았다.

3. 소심한 성격이라 내 생각과 느낌을 표출하는 것을 꺼려했으며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를 먼저 생각해서 행동했다. 내 할 일보다는 주변의 요구를 먼저 의식하고 행동하느라 에너지를 소모했다. 스트레스 푸는 법을 몰랐고, 그저 내 속에서 쌓기만 했다.


나는 병이 나기 전까지 이렇게 살았다. 겉으로 봐서는 건강한 식습관을 실천하는 사람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욕먹지 않고 잘 살았다. 몸과 마음이 서로 어떤 관계로 작동하는지, 어떤 신체기관이 나를 만들고 살아가게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뒤늦게 알게 되었다. 알면 알수록 신비하고 놀라운 신체기관의 역할에 대해서.

특히, 몸속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난소의 중요성과 역할에 대해 알게 되었다.

대표적인 여성암하면 떠오르는 유방암과 난소암. 둘을 동시에 진단받았다. 엎친 데 덮친 격. 설상가상.

겉으로 드러나는 유방은 수술과 복원을 통해 모습이 달라졌다. 복원수술 후 3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낯설다. 와이어 없는 브라를 하고 옷을 입으면 외적으로는 크게 변화가 없다. 다만 양쪽 크기의 부조화로 내 몸이 왼쪽으로 기울어진 느낌은 있다. 상실감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난소에 비하면 내 몸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적다.


유방과 달리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난소는 복원 과정이 없다. 그저 없는 장기이다. 혹시 모를 전이와 재발 방지를 목적으로 암이 생긴 난소뿐만 아니라 멀쩡한 난소도 제거했다. 자궁도 적출해 장기 2개가 내 몸에는 없다. 난소와 자궁이 사라졌으니 내 몸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했다. 세상에 쓸모없는 장기는 없다는 것을... 그중에서도 난소가 42년 인생 동안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한 순간에 사라지고 나서야 존재 그 이상의 가치를 알게 되었다. 여성호르몬, 폐경, 골다공증, 그리고 우울, 행복, 걱정, 불안, 긴장 같은 심리상태에서 몸의 면역에 이르기까지. 상실 후, 엄청난 신체적 변화를 겪으며 삶의 질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에스트로겐은 크게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폐경기 여성에게 나타나는 에스트론(estron, E1)과 가임기 여성에게 가장 많이 존재하는 에스트라디올(estradiol, E2) 그리고 임신기간 동안 분비되는 에스트리올(estriol, E3)이 있다. 에스트라디올과 에스트론은 주로 난소에서 합성, 분비되며 지방 조직과 부신에서도 분비된다. 반면 에스트리올은 임신한 여성의 태반에서 만들어진다. 남성은 부신과 정소에서 에스트로겐이 분비되며, 양이 여자에 비해 매우 적고, 주로 정자의 수와 형성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에스트로겐 [estrogen] (생화학백과)



우리는 보통 위의 설명처럼 구분하지 않고 3가지 화합물을 총칭하여 에스트로겐이라 부른다. 2차 성징에 관여하는 여성호르몬이라고 배운 게 전부였다. 2차 성징을 완성시키는 것 말고 여성의 일생을 책임지며 하는 일이 많은데 내 경우엔 강제로 인위적 수술로 제거해야 했다. 난소에서 분비되는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 분비가 없다는 건... 이에 더해 지방이나 부신에서 분비될 수 있는 소량의 에스트로겐도 억제하기 위해 페마라(Femara)라는 호르몬억제제를 4년째 복용하고 있다. 에스트로겐이 한 방울이라도 몸속에 있으면 암이 생겨날 수 있는가? 전투적인 자세로 선제적으로 에스트로겐의 분비와 합성을 통제하고 있다. 그 결과를 내 몸은 바로 증명해 보였다. 여성호르몬의 역할과 중요성을. 난 글이 아닌 몸으로 배웠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 호르몬의 엄청난 영향력을. 여성호르몬이 없으니 당연 생리부터 끊겼다. 폐경이 되었다. 보통 40대 중후반부터 시작돼서 생리가 완전히 없어지고 이후의 1년까지, 4-5년에 걸쳐 서서히 일어나는 갱년기라는 중간과정이 없이 10여 년을 훌쩍 뛰어넘었다. 에스트로겐이 뼈 강도를 유지시키는 역할을 했기에 내 뼈도 호르몬의 영향을 피할 수 없었다. 매일 아침, 자는 동안 굳어버린 손가락을 하나하나 풀고 스트레칭을 하고 나서야 침대에서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바닥에 앉거나, 앉았다 일어나기가 힘들어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다. "아이고"하는 신음소리가 입만 열면 나왔다. 바짝 마른 장작같이 뻣뻣하고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은 노인의 몸으로 변신했다. 몸이 굳는 느낌이 들어 30분 이상 책상에 앉아 작업을 할 수 없었다. 골밀도 검사를 6개월마다 정기적으로 하고, 수술 후 2년 뒤부터 골다공증 약을 매주 1번씩 복용하게 되었다. 골다공증 약 또한 내 몸이 받아들이기까지는 6개월의 시간이 필요했다. 약의 부작용이 있었다. 복용하는 당일에는 두통과 메스꺼움으로 진통제를 복용하며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였지만 이것도 6개월이 지나니 견딜만했다.


지금 나는...

1. 운동을 매일 한다. 집에서 홈트로 스트레칭, 스쿼트를 하고, 매일 8000보~1만 보 걷기를 한다.

(코로나 19 엔데믹이 예상된) 2023년부터 인생 처음 GX를 통해 근력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2. 상품의 라벨을 읽는다. 가끔 먹는 피자를 제외하고는 햄버거, 라면, 튀김음식은 끊었다. 우유(라테만 예외), 치즈, 요구르트 같은 유제품도 끊었다. 찬 음식은 안 먹는다. 유기농, 무농약, 무항생제, 동물복지 식품을 선택한다.

3. 소심한 성격이 적극적으로 변하지 않았지만, 조금씩 변화가 느껴진다. 내가 뭘 원하는지(want)를 먼저 물 어 보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말은 더 이상 참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지 표현한다. 스트레스를 차곡차곡 쌓지 않고 저녁산책을 통해 하루가 지나기 전에 해소한다.


4년 동안 난소 없는 일상을 살아내면서 웬만큼 적응했다. 수술 전 내 몸이 어땠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 맞다는 것을. 불행도, 장애도 적응하며 살아가게 되는 존재임을 실감했다. 운동과 음식으로 나를 잘 다스려온 것도 한 몫했다. 꾸준한 운동과 걷기 덕분에 관절이 굳는 현상은 좀 누그러졌고, 골다공증 약은 잠시 복용을 중단할 정도로 좋아졌다. 건강해진 몸 덕분에 우울감이 한 달에 2-4회 정도로 줄어들었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처럼 나의 몸과 마음도 건강을 찾아가고 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앞당겨진 노화로 불편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마음만은 불편하지 않게 살기로 선택했다. 웰빙을 중시하는 사람으로. '아프기 전처럼 건강해질 거야' 혹은 '재발하면 안 되니까 건강만 신경 쓰자' 같은 강박에 사로잡혀 사는 게 아니라 육체적 정신적 건강의 조화를 통해 행복한 삶을 살고자 노력 중이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보통 아프고 나서야 자신의 몸과 마음을 치료하려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발버둥 친다. 너무 늦기 전에 몸이 보내는 신호를 귀담아듣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생활습관을 점검하고, 규직적으로 운동하고, 건강검진은 숙제처럼 꼭 해야 한다고 주변에 이야기한다. 외모의 변화보다 몸속 변화가 더 빠르게 일어난다고 하니 몸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소 잃기 전에 외양간을 고칠 계획을 세워야 한다.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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