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94
방학식 기념으로 짜장면을 사주셨고, 새 학년이 되면 옷이며 신발, 학용품을 새로 사주셨다. 우리 엄마 이야기다. 끝나면 끝나는 대로, 시작하면 시작하는 대로 의미를 두고 삼 남매를 키워주셨다. 아빠에게 생활비를 받아 살림하는 빠듯한 생활로 본인에게는 당시 천 원짜리 시장표 치마하나 사 입는 것도 사치라고 여겼지만 자식들에게는 달랐다. 그런 엄마의 새 학기 준비에 매번 감사했고, 그 감사함을 일기장에 고스란히 남겼다.
"엄마가 새 공책과 옷을 사 주셨다. 열심히 공부해서 기쁘게 해 드려야겠다."
낡고 너덜너덜해진 어릴 적 일기장 더미들은 눈앞에서 사라졌지만,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겠다는 다짐만은 늘 가슴속에 간직하고 자랐다.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가 되니, 그때의 엄마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커가는 아이들을 보며 의미를 부여해서 사주고 챙겨주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한동안 엄마처럼 했다.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이들 반응이 시큰둥했다. 언제든지 말만 하면 웬만하면 다 사주는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란 덕분인지 물건의 소중함도, 받는 기쁨도 아이들의 마음속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주변의 아이들을 봐도 쉽게 소비하는 습관 속에서 자라는 것이 안타까울 때가 있을 정도다.
다른 한편으로는 아이들에게 고마웠다. 친구들과 비교하며 물건을 사달라는 투정을 부리지 않는 아이들로 자라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필요할 때 사줘야 고마움도 크다는 것을 서로 알게 되어 덕분에 살림살이에도 도움이 된다. 무리해서 사 주지 않아도 문제없다.
지난주, 아들 친구 엄마가 나에게 물었다.
"언니, 가방 샀어요?"
"아니, 우리는 6학년 때 전학 오면서 큰 걸로 사서 그냥 쓰기로 했어."
"요새는 디스커버리나 내셔널지오그래픽으로 산 데서, 전 디스커버리 신제품으로 샀어요."
"울 집도 작년에 디스커버리로 샀어."
그날 저녁, 아들에게 물어봤다. 친구들끼리 새 가방을 사는 것을 두고 서로 물어봤다는 말을 했다. 자기는 있으니 안 사도 될 것 같다고 했다. 괜찮겠냐고, 다시 물어봤다. 아들은 쿨하게 다음에 사겠다고 했다. 아들의 뜻과 내 뜻이 하나 되어, 예전의 습성대로, 새 물건으로 새 학기를 맞이하는 건 안 하기로 했다.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가방은 그대로 쓰지만, 대신 마음가짐은 새롭게 하기로 했다. 중학교 자습서를 챙겨주고 앞으로 다가올 학업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단,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이야기하라고 했다. 중학교에서 안내받은 예방접종을 마치고 증명사진을 찍으며 준비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아들의 마음을 준비시키고, 내 마음도 함께 준비시킨다. 혼자 앞서나가지 말고, 아들과 함께 같이 가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