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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방학이 주어진다면...

아침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97

by 태화강고래

두 달간의 겨울방학이 열흘정도 남았다. 이쯤 되니,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게 된다. 방학을 앞두고 세웠던 계획과 실천 여부를 점검할 시간들이 다가온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과연 무엇을 얻고, 잃었는지 다 같이 식탁에 모여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아이들의 방학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를 해 보고 싶다.

가끔 아이들이 물어볼 때가 있다.


"엄마는 방학이 좋았어요? 개학이 좋았어요?"


한 마디로 말해, 난 방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학생이었다. 친구들과 놀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방학 동안 친구들이 뭘 하며 어떻게 지내는지가 궁금해서였다. 남들은 나와 다르게 어떤 특별한 일을 할까?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를 얻게 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된 후로는 방학을 의미 있게(?)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주어진 것은 잘했지만, 스스로 찾아서 하는 일에는 어쩐지 자신이 없는 게 탈이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대학입시라는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갔기에 그저 공부만 하면 됐다. 대학생이 되면서부터가 문제였다. 학기 중에도 시간이 많았지만, 방학은 온전히 내 시간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이 참 아쉽다. 방학이 되면, 습관적으로 영어학원에 등록했다. 종로 파고다학원에 가서 외국인 회화수업을 들었다. '영문학 전공이니 영어를 잘해야 해, 취업을 하든 공부를 계속하든 영어가 필요하니까'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갔다. 활달한 성격이 아니었기에 투자한 돈과 시간에 비해 회화실력은 제자리걸음이었다. 나머지 시간에는 집이나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가끔 친구들을 만났다. 규칙적이며 특별할 것 없는 단조로운 생활을 했다. 소극적이고 눈치를 보는 성격 탓에 자신감이 부족했다. 부끄럽기까지 하다.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어학연수를 가기 전까지, 논 것도 아니고 공부한 것도 아닌, 애매한 방학을 불편한 마음으로 만났다. 의미 있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라면, 목표를 갖고 적극적으로 살면 되는데 왜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을까?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청춘의 방학"을 보내고 싶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도 있지만,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를 내고 싶다.

첫째, 배낭여행을 떠날 것이다. 기한을 정하지 않고 세상을 구경하면서 나를 살펴보고 싶다.

둘째, 책에 파묻혀 볼 것이다. 간접 경험을 많이 쌓아서 삶의 원칙을 정하고 싶다.

셋째, 구체적으로 직업을 준비하고 싶다.


아직도 나를 잘 모른다. 여전히 찾고 있다. 그런데 이제 한 가지는 분명하게 안다. 잘 모를 땐 그저 나를 바라보고 관찰하는 시간을 가지면 된다는 것을. 조급할 필요도 없고, 남과 비교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그저 생각하고, 결정하면 열정적으로 실행해 보고, 반성하고, 다시 또 나아가면 된다는 것을. 직간접적인 경험의 폭을 넓혀야 한다. 나만의 시간을 가지면 된다는 것을 살아보니 알겠다. 타인의 조언에 마음이 흔들려 포기하기보다는, 계획하고 결정한 후 그 방향으로 몸을 틀어 가보면 되는 것이었다. 놀기로 작정하면 놀면서 경험을 쌓고, 공부하기로 작정하면 교과서나 전공서적만 볼 게 아니라, 관심사를 넓히고 폭을 깊게 하면 된다. 그때는 나름의 이유로 하지 못했거나 안 했겠지만, 생각을 미루고 그저 반복적인 일상을 살았다. 젊음이라는 가장 중요한 자원 활용방법을 몰랐다.


지나간 시간은 어쩔 수 없다. 다행히 이제라도 나를 보는 시간을 갖고 있다. 조금씩 조금씩. 남을 의식하기보다는 내 몸과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하려고 노력한다. 여전히 몸으로 경험하고, 책으로 경험하면서 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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