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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96

by 태화강고래

봄이 오기 전 겨울맛을 차려주었다.

맘껏 느끼라고.

하얗게 눈이 내려앉은 나뭇가지를 좋아하는 내 마음에도

눈을 만지며 하트를 만들고, 오리를 만드는 우리 딸 마음에도.


눈의 무게를 계산하지 않고,

초록과 흰색이 어우러져 있을 때

눈을 버틸 정도의 가지가 아름답다.


박완서 작가의 에세이 제목과 글이 생각났다.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1973년,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쓰인 에세이에는 내가 추구하는 엄마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아이들의 책가방은 무겁다. 그러나 단순히 책가방의 무게만으로 한창나이의 아이들의 어깨가 그렇게 축 처진 것일까? 부모의 지나친 사랑, 극성이 책가방의 몇 배의 무게로 아이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거나 아닐지.

"내가 너한테 어떤 정성을 들였다고. 아마 들인 돈만도 네 몸무게의 몇 배는 될 거다. 그런데 학교를 떨어져 엄마의 평생소원을 저버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 장가들자마자 네 계집만 알아. 이 불효막심한 놈아."

이런 큰소리를 안 쳐도 억울하지 않을 만큼, 꼭 그만큼만 아이들을 위하고 사랑하리라는 게 내가 지키고자 하는 절도다. 부모의 보살핌이나 사랑이 결코 무게로 그들에게 느껴지지 않기를, 집이, 부모의 슬하가,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마음 놓이는 곳이기를 바랄 뿐이다.

아이들은 예쁘다. 특히 내 애들은. 아이들에게 과도한 욕심을 안 내고 바라볼수록 예쁘다.

-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380쪽>


40여 전보다 훨씬 더하면 더했지 줄어들 기세가 보이지 않는 게 요새 부모의 겉으로 드러나는 사랑이다. 옆집과 비교하며 경쟁하듯이 3-4개씩 학원 보내고, 주말도 방학도 없는 게 아이들의 일상이 되었다. 어쩌다 특목고나 SKY에 입학했다는 소식이라도 들리면, 나도 더 시켜야 하나 불안감이 불쑥불쑥 찾아온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에 선을 지키고 애써 남을 따라가지 않는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쌓여가는 기대가 클수록 아이들도 부모도 서로 힘들어져 결국 한쪽이 쓰러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눈이 어우러진 설경이 잠시 아름답듯, 자식이 느끼는 부모의 사랑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길 바라기 때문이다. 무게로 안 느껴지길, 오래 함께 갈 수 있길 바라기에 먼저 살다가신 어른의 말씀이 나에게 깊숙히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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