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96
초록과 흰색이 어우러져 있을 때
1973년,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쓰인 에세이에는 내가 추구하는 엄마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아이들의 책가방은 무겁다. 그러나 단순히 책가방의 무게만으로 한창나이의 아이들의 어깨가 그렇게 축 처진 것일까? 부모의 지나친 사랑, 극성이 책가방의 몇 배의 무게로 아이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거나 아닐지.
"내가 너한테 어떤 정성을 들였다고. 아마 들인 돈만도 네 몸무게의 몇 배는 될 거다. 그런데 학교를 떨어져 엄마의 평생소원을 저버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 장가들자마자 네 계집만 알아. 이 불효막심한 놈아."
이런 큰소리를 안 쳐도 억울하지 않을 만큼, 꼭 그만큼만 아이들을 위하고 사랑하리라는 게 내가 지키고자 하는 절도다. 부모의 보살핌이나 사랑이 결코 무게로 그들에게 느껴지지 않기를, 집이, 부모의 슬하가,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마음 놓이는 곳이기를 바랄 뿐이다.
아이들은 예쁘다. 특히 내 애들은. 아이들에게 과도한 욕심을 안 내고 바라볼수록 예쁘다.
-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380쪽>
40여 전보다 훨씬 더하면 더했지 줄어들 기세가 보이지 않는 게 요새 부모의 겉으로 드러나는 사랑이다. 옆집과 비교하며 경쟁하듯이 3-4개씩 학원 보내고, 주말도 방학도 없는 게 아이들의 일상이 되었다. 어쩌다 특목고나 SKY에 입학했다는 소식이라도 들리면, 나도 더 시켜야 하나 불안감이 불쑥불쑥 찾아온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에 선을 지키고 애써 남을 따라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