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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갈비 앞에서 울었습니다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98

by 태화강고래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봐!"

"음... 갈비요, 갈비!"


딸은 주말 외식 메뉴로 갈비를 선택했다. 갈비라는 두 글자... 말만 해도 군침이 돌아 빨리 먹고 싶다고 했다. 수학학원 시험 성적표를 받았다. 지난 3개월간 5-1학기 과정을 배운 뒤 치른 평가에서 예상치 못한 결과를 들고 집으로 달려 들어왔다. 학원을 다니며 그렇게 상기된 얼굴은 처음이었다. 재원생들을 대상으로 한 시험에서 상위 4.7%라는, 289명 중 14등이라는 난생처음 받아본 숫자에 좋아서 펄쩍펄쩍 뛰었다. 수학에 자신감이 생겨 공부가 즐거워졌다는 말은 했어도 결과까지 좋으니 아이의 기분은 날아갈 듯싶었다. 학원비가 아깝지 않다는 말을 자주 할 정도로 그동안 만족도가 높았다.


드디어 근처 외식타운 고깃집에 도착했다. 돼지갈비 맛집으로 알려진 식당 앞에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다.

소갈비 31,000원 (350g)

돼지갈비 15,000원 (250g)


소와 돼지 사이에서 잠시 망설였다. 가격이 또 오른 것 같았다. 4인 가족 외식비로 10만 원을 넘지 말자는 무언의 약속이 있었기에 돼지를 선택하기로 정하고 들어갔다. 점심시간에 맞춰 간 식당은 손님들로 가득했다. 여기저기 숯불 위의 고기냄새로 진동했다. 전자 메뉴판을 보며 남편은 돼지갈비를 주문했다. 외식물가는 가까이하기엔 참 먼 당신이었다. 외벌이지만,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도 소갈비 앞에서는 주저했다. 울산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소갈비를 사 먹던 지난날을 이야기하며 아쉬운 마음에 지역 차이와 물가 상승을 이야기할 뿐이었다.


숯불을 넣고 불판 위에 양념된 고기를 올렸다. 빨리 먹고 싶다고 재촉하는 딸을 보며 부모는 부지런히 집게와 가위를 들고 고기를 구웠다. 지글지글, 달짝지근한 냄새를 풍기며 돼지갈비는 익어갔다. 익은 고기를 보자마자 남편은 옆에 앉은 아들의 접시에, 나는 딸 접시에 한두 점씩을 줬다. 한 입 먹은 딸은...


"소갈비 아니에요?"

"응. 돼지갈비야."

"그래요??????? 어쩐지 색깔이 달라 보이더니..."


딸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돼지갈비라는 말에...

울 줄은 몰랐다. 모두가 놀랐다. 소갈비를 기대했던 딸의 입에 들어온 고기는 돼지갈비였기에 딸은 실망감을 드러낼 말을 찾기도 전에 눈물을 쏟았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뀐 것을 눈앞에서 보자 운다고 놀릴 수 없었다. 진지했다. 울지 말고, 맛있으니 어서 먹어보라고 달래면서 상황을 수습했다. 미안하다고, 비싸서 소 대신 돼지라고, 집에 가서 한우 등심 구워주겠다고, 엄마는 옆에서 구운 고기를 연신 딸에게 권했다. 다행히 금방 진정되었다.


"맛있어요. 엄마도 좀 먹어요."


자기 접시에 담긴 고기를 내 접시에 건네면서 나를 챙겼다. 금세 잊었는지, 아니 맛있게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잘 먹는 딸이 고마웠다. 항상 그렇듯 고기를 굽고 아이들 챙기느라 별로 먹지 못했어도 괜찮았다.

통 크게 소갈비를 사 주지 못하는 우리가 중산층이 맞기는 한 걸까, 소비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우리를 만났다. 돼지갈비 덕에 마음껏 못 사주는 부모의 심정을 경험한 것도 잠시, 우리는 고물가시대를 살아가는 부모였다. 더욱이, 50대 가장의 플렉스보다는 미래 준비가 우선이라 소갈비에게 순순히 지갑을 열 수 없었다.


"돼지갈비 맛집이잖아. 맛있었지?"

그렇게 우리는 식사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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