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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서점에 가면 마음이 편하다.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99

by 태화강고래

언제부터 책 욕심이 생겼을까? 독서광도 아니고, 문학소녀도 아닌데, 왜 책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책이 많은 집은 아니었다. 배움이 짧았던 부모는 책을 가까이하며 살지 못했다. 그래도 어린 자식들을 위해 위인전을 비치해 두어 가끔 펴서 읽었다. 학생이 되어 공부를 잘하고 싶고,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문제집과 책을 사기 시작했다. 책을 산다고 하면 엄마와 아빠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돈을 주셨다. 책을 사는 순간부터 책 속에 든 지식이 내 머릿속으로 저절로 들어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른 소비에 비하면 정당하고 떳떳한 소비 중의 소비였다.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그렇다.


작년에 알라딘 중고서점이 문을 열었다. 도보로 갈 만한 거리에 생겨 산책도 하고 덜 부담스럽게 소비할 기회가 찾아온 듯했다. 혼자서 다니며 사고 싶었던 책을 야금야금 구입해서 책장에 고이 꽂아 두었다. 아이들을 꼭 데려가겠다고 마음먹다가 드디어 딸을 데리고 갔다. 갑자기 추리소설에 관심이 생겼다는 딸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책 한 권 사 주고 싶었다. 쇼츠 시청을 줄이고 책 읽는 시간을 늘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어 서점에 함께 갔다. 그리 넓지 않은 매장에 사람이 꽤 많았다. 주말이라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가 여럿 보였다. 추리소설이라면 셜록 홈즈가 떠올라 그의 대표적인 단편들을 모은 책을 골랐다. 이름도 생소한 셜록 홈즈와 얼마만큼 친해질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겠다.



울산에 사는 동안 주말마다 알라딘 중고서점으로 가족 나들이를 다녔다. 당시 처음 가 본 중고서점은 일반 서점처럼 쾌적하고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는 데다 정가보다 저렴한 가격이 무척 매력적이었다. 비닐도 벗기지 않은 새 책부터 약간 구김이 있는 책까지, 중고라고 분류된 책들이 상당히 잘 갖춰져 있었다. 아이들이 한창 빠져있던 WHY시리즈는 거의 다 구입해 책장을 가득 채웠다. 명작동화와 그림책, 영어원서도 빼놓지 않았다. 방문할 때마다 아웃렛 매장에서 쇼핑하듯, 가방 한가득 책 쇼핑을 했다. 가장 고가의 책은 5만원을 주고 산 "지도로 보는 세계사"였다. 백과사전 크기에 방대한 내용에 압도되었다. 한창 지도에 빠져 있던 아들이 선택한 책이었다. 글씨가 작아 가독성이 약간 떨어지는 아쉬움은 있지만 세계 역사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게 정리해 놓은 보물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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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알라딘은 대형서점 최초의 오프라인 중고서점으로 오픈했다. 낡고 허름한 중고서점의 이미지를 탈피한 세련된 인테리어 덕분에 젊은 층에게 인기가 많아 국내 55개, 해외 1개 매장을 운영 중이라고 한다. 새책도 있고, 새 책 같은 중고책을 정가보다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살 수 있어 자주 방문하게 된다. 서점에 가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진다. 머리가 복잡할 때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을 때도, 혼자 가서 시간을 보내기에는 최적의 장소이다. 더구나 교보문고 같은 대형 서점에 비해 중고서점은 방문객도 적고 조용해 더욱더 도서관에 있는 느낌이 든다. 지식을 찾기도 하지만, 마음의 평화를 찾아가는 최애 장소 중 하나이다. 중고서점이 가까이 있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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