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00
양쪽 귀옆으로 흰머리가 쑥쑥 자라고 있다. 콩나물시루 안의 콩나물처럼. 콩나물은 먹기라도 하지, 흰머리는 어떠한 쓸모도 없는 숨기고 싶은 대상이다. 염색주기를 최소한 두 달로 맞추기 위해 매일 거울을 보며 그날을 기다린다. 암 경험자가 된 후에도 몸에 해롭다고 알려진 염색을 여전히 데리고 산다. 암경험자로 두 번째 인생을 살면서 운동과 식사로 대표되는 건강한 생활습관을 웬만큼 장착했지만 염색만은 예외다. 며칠 후면 암경험자로 산지 5년이 된다.
항암치료 때문에 머리카락이 빠졌다. 치료가 끝나고 머리카락이 새로 자라기를 기다리면서, 제발 흰머리대신 검은 머리카락이 나길 진심으로 바랐다. 네이버 암환자 카페에서 흰머리가 나왔다는 경험자의 글을 보면서, 나도 그럴 것 같은 가능성과 제발 아니길 바라는 희망사이에서 몇 달을 조마조마해하며 기다렸다. 두둥... 역시나... 흰머리는 아프기 전 제자리를 잘도 찾아냈다. 알아서 자기 자리에 뿌리를 내렸다. 흰머리라도 난 게 어디냐 싶다 가고, 슬프고 화가 났다. 그 독한 항암도 새치뿌리까지 없앨 만큼 강하질 못했나, 항암도 했는데 고생했다고 검은 머리카락 선물을 주면 누가 뭐라나 등 화가 났다. 머리카락이 없을 때는 염색에 대한 고민이 1도 없었다. 민머리가 낯설고 서글펐지만, 한편으로는 편안했다. 매일 머리를 감고 말리느라 시간을 보낼 필요가 없었다.
머리카락이 없을 때도 있었는데, 막상 생기니 행복한 고민이 다시 시작되었다.
염색약과 암의 관련성을 다루는 기사를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 염색약에 포함된 암모니아와 PPA성분이 두피와 눈 건강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유방암 발병률을 높일 수 있다는 결과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지난날 10년 넘도록 한 달에 한 번씩 염색해서 암에 걸렸을까라고 발병 이유를 애써 찾기도 했다. 직장생활을 하니 깔끔하게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새치가 뿌리에 보이기 시작하면 미용실에 가곤 했다. 지금이야 집에 있으니 그나마 두 달에 한번 간다. 처음에는 물염색약을 사다가 집에서 했다. 커트하러 간 미용실에서 집에서 한 염색을 알아보고 얼룩졌다는 말에 다시 미용실에 갔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만두고 백발로 살아야 하는지 여전히 고민은 진행 중이다. 그런데 분명한 건, 40대에 백발로 살 자신이 없다. 가끔 남편은 농담 삼아 염색하지 말고 백발로 살라고 한다. 건강이 우선이라고. 덜 아파봐서 철이 덜 들었나 싶기도 하지만,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흰머리를 자신 있게 드러내며 살 자신이 없다. 아이들도 이제 겨우 사춘기에 들어서는데, 안 그래도 친구들 엄마보다 3-6살 나이가 많은데 외모까지 나이 들어 보이고 싶지 않다.
아이들이 20살이 되면, 그때는 염색에서 자유롭게 되길 바라며 산다. 60대가 되어도 흰머리를 당당하게 보이며 살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때가 되면, 또 마음이 바뀔 수도 있겠지. 백발이 잘 어울리는 여성으로 강경화 전 장관과 맥신 홍 킹스턴 중국계 미국인 작가가 떠오른다. 나도 그녀들처럼 멋지게 잘 어울린다면 당당하게 감히 도전해 볼 수도 있겠다. 그날을 위해 먼저 스스로를 당당하게 만드는 일부터 시작하고 백발은 천천히 받아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