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101
택배가 도착했다. 펜이 여러 개 들어 있었다.
딸과 아들에게 줄 거라며 남편이 주문했다.
우리 부부는 3색 하이테크 펜을 좋아한다. 메모하고 정리하는 일을 습관처럼 하는 우리는 학생처럼 펜 욕심이 있다. 대형서점의 문구류 코너에 펼쳐진 형형색색의 필기구 꽃밭을 지나갈 때면 발걸음을 멈추고 감탄한다. 이왕 쓰는 거 그립감 좋고, 부드럽게 잘 써지는 펜으로 쓰면 예나 지금이나 공부가 잘 되는 것 같은 묘한 착각에 빠진다. 연장 탓을 하듯 필기구를 고른다.
하이테크 0.3mm를 처음 본 건 고등학교 때였다.
당시는 신상 필기구를 통해 스트레스를 푸는 학생신분이었다. 빽빽하게 쓰고 형광펜으로 중요한 내용을 칠하는 일이 일상이었다. 어느 날 친구가 얇고 독특한 펜을 사용했다. 알고 보니, 일본 제품으로 국산품보다 고가였다. 하나에 2,000원 정도로 비싼 학용품을 그 친구는 색연필처럼 색깔별로 가지고 다녔다. 호기심에 한두 번 사서 쓰다가 얇고 힘 조절에 실패하면 막혀 잘 써지지 않아 더 이상 안 썼다. 그 이후로도 학생의 무기는 필기구라고 믿으며 부드럽게, 빨리, 잘 써지는 펜을 찾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남편은 고등학교 때 기억 속의 그 친구처럼 작은 글씨를 똑같은 펜으로 잘 썼다. 그 당시보다는 제품이 더 다양해지고, 부드럽게 발전(?)했는지 어느 날 남편이 3색을 넣어 건네주자, 선물을 받은 듯, 기분 좋게 사용하기 시작했다.
딸은 주로 연필과 샤프를 사용하는 초등학생이지만, 수학문제를 공책에 쓰고 정리할 때 색깔 펜을 쓴다. 우리가 쓰는 펜을 쓰고 싶다는 그 한마디 말에 남편은 딸을 위해 쇼핑을 시작했다. 집에 여분으로 있는 펜을 줘도 될 법한데, 아빠 마음은 그런 게 아니었나 보다. 성인보다 손이 작은 딸을 위해 특별 맞춤이라도 할 태세였다. 파일롯트에서 나온 펜 6개를 샘플로 주문했다. 식탁에 늘어놓고 딸에게 각각의 특징이 다르니 직접 손에 쥐어 써 보라고 했다.
그립감과 디자인이 선택 포인트였다.
"이건 색깔이 좋고, 저건 잡기 편해서 좋아요"라며 아직은 특별한 선호가 없는 듯했다. 펜 사용이 익숙하지 않아서였다. 차차 써보면서 맘에 드는 것이 자연스레 생기게 될 거라고 아빠는 자상하게 말했다. 갑자기 3색 펜 부자가 된 딸은 그저 좋아했다. 아빠에게 받는 관심에 행복해 보였다. 바라보는 아빠의 얼굴에도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둘을 바라보며 슬그머니 웃었다. 새 학기도 되고, 필기구를 준비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얼마만큼 활용해서 학습에 사용할지는 모르나 일단 준비는 되었다. 쓰기만 하면 된다. 여기에 아빠의 마음을 알아주면 더 좋겠다.
* 집안 이야기를 쓰다 보니 어쩌다 펜 광고글 같이 보여서 약간 민망합니다. 그냥 재미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