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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시간 부자?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10

by 태화강고래

등굣길에 딸은 가끔 묻는다.

"엄마는 우리가 학교 가면 뭐해요? 심심하지 않아요?"


남편에 이어, 딸도 자주 물어본다. 내가 심심하지 않은지. 심심한가? 안 심심하면 이상한 건가? 엄마가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궁금해하니 한편으로는 고맙다.


아이들이 하교할 때까지 보통 5~6시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중학생 아들하나 키우는 지인은 아들이 하교 후 바로 학원가는 스케줄이라 남편이 퇴근하는 저녁 8시까지 혼자 있게 되니 심심하다고, 차라리 방학이 좋다는 푸념을 늘어놓았다. 약속을 많이 잡아야 할지, 일을 하러 나가야 할지 고민스럽다고 했다. 아이들을 챙기느라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던 엄마들이 갑자기 할 일이 없어져 벌써부터 빈 둥지 증후군을 겪는 듯했다. 물론, 일반화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주변을 보면 심심찮게 그런 엄마들이 보인다. 자기 계발, 파트타임, 건강관리 등 인터넷 카페를 보면 엄마들이 저마다 원하는 일이든, 필요로 하는 일이든, 뭐든 하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경제적 자유라는 목표를 달성한 뒤, 원하는 삶에 맞춰 시간을 쓰기 위해 조기 퇴직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엄마는 경제적 자유 없이 시간이 주어진 특별한 사람군이다. 엄마는 돈 대신 시간을 택한 셈이다. 경제활동으로 통장에 찍히는 게 없는 대신 시간과 돈을 계속 쓰고 있다. 전업 엄마가 되니 일하는 엄마였을 때보다 가용시간이 많아져 얼떨결에 자유시간이 많아졌다. 그래서 퇴직 1년 차에는 약간의 정신적 방황기도 거쳤다. 이제는 엄마로 살아가는데 적응했다. 거기에 아이들이 커가고 있으니 자연스레 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하루 24시간 동일한 시간을 살지만 작정하면 새로운 시도를 할 만큼의 시간이 쌓이고 있다. 주어진 시간의 소중함을 알기에 모범생처럼 잘 쓰려고 애쓰는 편이다. 시간관리법 책도 보고, 유튜브를 참고하며 나름 to do list까지 적어가며 부끄럽지 않게 보낸다. 경제활동과 바꾼 시간이라 그저 넷플릭스를 보고, 누워서 뒹굴뒹굴하며 킬링 타임하지 않는다.


그래서, "엄마는 집에서 논다"는 말을 제일 듣기 싫어한다. "집에 있으니까 좋겠다"는 말도 듣기 싫어한다. 그 말에는 가야 할 곳이 정해진 자신들과 달리 집에서 자신들이 그렇듯 논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집에 있다는 건, 노는 게 아니다. 가족이 없는 동안 가족이 돌아와 먹을 음식을 준비하고, 집안을 정리하고, 세탁하고, 그러면서 틈틈이 운동하고 가족의 스케줄 관리에 신경 쓴다. 엄마가 건강해야 집안이 편하다. 전업주부는 가족의 집사이며 가족의 돌봄 제공자이다.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집을 만드는 일을 한다.


어찌 보면, 엄마는 시간 부자가 아니다. 그저 엄마라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그 시간을 쓰고 있는 중이다. 운동하고 공부하며 자신을 돌보고 있다. 시간부자도 부자라면 부자이니 더 큰 부자가 되고 싶다. 욕심이 생긴다. 근검절약하든, 아님 재테크를 하든, 불려서 앞으로의 활동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다만, 스크루지 같은 인색한 부자가 되고 싶지 않다. 나를 성장시킨 시간이 궁극엔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컨디션이 허락하는 한 가만히 있지 않는다. 그런 성격을 타고났다.


딸아, 엄마도 놀지 않고, 잘 보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아. 그리고, 미안하지만, 심심할 틈이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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