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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14

by 태화강고래

엄마의 한숨과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순간 속은 답답해지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지난주 말끔하게 해결된 것으로 생각하고 머릿속을 떠났던 문제가 어제부터 다시 엄마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자초지종을 알아보고 같이 해결해 보자고 병원으로 당장 가겠다는 나를 엄마는 평상시와 다르게 말리지 않았다. 급히 카카오택시를 호출했다.


호출 후 5분도 안돼 바로 택시가 도착했고, 처음에는 기사님과 대화를 나눌 생각이 전혀 없었다. 1분이라도 빨리 엄마를 보러 가야 해서 마음은 바쁜데 평소 운전해서 가는 길이 아닌 복잡한 동네길을 가면서 여러 번 신호에 걸리기를 반복했다. 참을까 잠시 망설이다 말을 꺼냈다.


"기사님. 이 길 말고 아까 지하통로 옆길로 가시면 빠른데 왜 이길로 가세요?

더 막히는 거 같은데, 제가 다니던 길이 아니라서 여쭤봐요."


"네비에서 이 길로 가라네요. 미리 말씀하시지 그랬어요? 말씀하신 길로 가면 요금이 더 나온다고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네비 따라갑니다. 그게 문제가 없어요."


"아, 그렇겠네요. 제 생각만 하고 그랬어요."


" 다음부터는 원하는 길이 있으심 미리 기사한테 이야기하세요. 그게 편합니다."


그러면서 기사님과의 대화가 자연스럽게 시작되었다. 53년생으로 은퇴 후 택시를 하신다고 했다. 아빠 같은 외모에 70대라고 보기에는 믿기지 않을 만큼 무척이나 젊어 보이셨다. 아빠 같은 포근한 친근감이 내 입을 열게 했다. 백화점에서 근무하셨던 분이라 서비스정신은 몸에 배어 있는데, 택시는 딴 세상이라고 하셨다. 아침에도 맥 빠지는 일이 2건이나 있으셨다고. 택시를 하다 보니 세상에 참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느끼신다고 했다. 뉴스에나 나올 법한 술 마시고 택시를 타고는 내릴 땐 돈 없다고 때리는 사람, 조수석에 앉아 두 다리를 뻗고 앉는 사람, 카카오 택시가 되는지 미리 한번 호출해 보는 사람 등 등... 상식을 벗어난 오만가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고. 매너 좋은 손님이 대부분이나 한 번씩 진상인 손님을 태우고 나면 그날 하루가 너무 힘들어 자기 전 술 한잔을 마시고 푸신다는 말씀까지 하셨다. 겨우 10여분 남짓 택시를 탔지만,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서 민망해하셨다.


"그래도 말씀하시니 시원하시죠?"

"참고 또 참으면 화가 사그라들죠."

"그래도 너무 참으시면 병나요."


그저 듣고, 맞장구치며 나도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이었다. 그랬다. 나와 다른 사람들과 섞인 이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매 순간 얼마나 많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낯선 사람에게라도 가끔은 내 이야기를 하는 게 도움이 된다. 나를 모르니 그저 들어주기만 해도 속이 풀리는 게 효과 만점이다. 그래서 어쩌다 한 번씩 택시를 타면 기사님과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기사님의 인격을 살펴보고 말씀을 건네시면 슬그머니 이야기를 시작한다. 서로의 이야기를 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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