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10여 년 만에 결혼식에 다녀왔다. 그동안 주변에 결혼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한 달 전쯤 고모네 둘째 아들의 결혼 소식을 전해 듣고 인천에 직접 가서 축하해주고 싶었다. 마흔이 훌쩍 넘어 짝 없이 사는 자식을 항상 걱정하던 고모의 근심도 이제는 끝이겠구나 싶었다. 미혼이든 비혼이든 결혼은 인생의 필수가 아닌 선택사항이 된 시대라지만 늦게라도 결혼을 한다니 부모입장에서는 해야 할 일을 완수한 속 시원함이 있을 것 같았다. 오래간만에 친가 경조사에 참석했다.
결혼식에 가니 돌아가신 아빠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살아계셨다면 제일 먼저 도착해서 누구보다 반갑게 친척들과 인사하느라 바삐 돌아다니셨을 텐데. 고모네 경사니 누구보다 기뻐하셨을 텐데. 내 부모만 빠진 그림을 보니 속상했다. 결혼식장 입구에서 기억을 더듬어 기억나는 어른들께 인사를 드렸다. 신랑도, 신랑부모도, 신랑 측 하객도 모두가 세월의 흐름을 피할 수 없었음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니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 한편에 씁쓸함도 들러붙었다. 친인척이라는 이름으로 사는 개인들의 생로병사를 업데이트하게 되었고, 그런 의미에서 만혼을 한 사촌의 결혼식장은 참 단출했다. 70대가 된 부모세대가 열일을 제처 놓고 찾아다니던 결혼식은 사라진 듯했다. 어릴 적 함께 놀던 사촌들과의 왕래도 거의 없어진 상태라 우리 세대에는 경조사에 얼마만큼 참석할 지도 의문이 든다. 물론, 사회경제적 위치에 따라 아직도 예전의 화려하고 북적거리는 결혼식이 펼쳐지고 있겠지만 강산이 변한다는 10년 만에 본 결혼식장은 이미 변해있었다.
"때가 되면..."이란 말이 있다. 그러나 인생의 중요한 통과의례로 여겨지는 결혼은 이제 더 이상 "때가 되었으니 결혼해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부모의 성화에 못 이겨, 노총각 노처녀라는 사회적 딱지가 무서워 서둘러 결혼하던 풍경은 사라진 지 오래다. 대신, 스스로 나에게 맞는 "때"가 오는 것을 알고 적극적으로 결정하는 시대가 되었다. 각자의 삶의 속도에 맞춰. 그런 의미에서 사촌의 결혼도 그의 때가 이제 온 것이었다.
3월 봄인데 벚꽃이 없다는 기사를 봤다.
"진짜 하나도 안 피었어" 현실이 된 벚꽃 없는 벚꽃축제
https://www.fnnews.com/news/202403221044352658
예상한 시기에 딱 맞추지 못하는 건 자연이나 인생이나 비슷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인은 당황스럽고 안타깝지만 본인은 준비가 안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꽃 피울 시기는 외부에서 정하는 시간이 아니라, 환경의 영향을 받은 스스로가 찾은 "때"이다. 다양한 꽃들이 각자의 속도에 따라 피어난다는 자연의 섭리를 이제는 인간이라는 꽃에도 대놓고 적용시켜야 할 시대가 되었다. 꽃이 피면 곁에 있는 사람가운데 진심으로 축하해 줄 사람만 참석해서 축하해 주면 된다. 가족중심스몰웨딩이 더 이상 특별한 결혼식 풍경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익숙한 풍경으로 다음세대로 전해질 것 같다. 어떤 풍경에서든 꽃을 보면 행복해지듯, 결혼하는 커플을 보면 행복하다. "축하해요.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