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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민사박물관에 다녀오다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16

by 태화강고래

인천에서 태어났지만, 서울에서 자라 인천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고모들이 사시는 곳이고, 어릴 적에 가족들과 월미도 횟집에서 회를 먹었던 기억만 있을 뿐이다. 그런 월미도 공원에 색다른 박물관이 있다. 한국이민사박물관. 2003년 미주 이민 100주년을 맞아 한국 이민사를 재조명하고 선조들의 개척정신과 발자취를 후세에 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2008년 개관했다. 꼭 한번 가겠다고 마음먹었던 그곳에 드디어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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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외부에 놓인 기념비


주말아침, 인천항에 위치한 이름도 낯선 박물관을 찾는 사람이 없을 거라는 예상을 깨고 20여 명을 보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곧이어 해설사의 설명을 주의 깊게 듣는 관람객 무리가 눈앞에 나타나자 뿌듯하기까지 했다.

'이곳이 외면받지 않고, 사람들이 찾는 곳이구나'

학생은 눈에 띄지 않고 중장년층만이 보였어도 다행이었다. 내가 공부한 이민의 역사를, 이민자도 아닌 내가 관심을 갖던 한국 근현대역사의 일부를 일반인도 관심 갖게 만든 박물관의 힘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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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들이 탔던 갤릭호 모형과 이동 경로


2층 전시실부터 관람을 시작한다. 제1, 2 전시실에서 최초의 이민인 하와이 이민을 시작으로 그들의 애환과 정착과정을 전시물을 통해 보여준다.


지상낙원이라는 하와이에서, 신혼여행지로 유명한 하와이에서, 나는 이민의 역사를 알게 되었다. 남자는 사탕수수농장의 노동자로, 여자는 사진신부로 일제강점하의 한국을 떠나 하와이로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선 개척자들의 이야기를. 절망 속 개인의 희망이 깃든 선택이라고 하기에는 가슴 시린 고통과 인내의 기록들을 만났다. 1902년 12월 인천항을 떠나 1903년 1월 13일 하와이에 도착한 101명이 공식적인 첫 이민자들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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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신부가 하와이에 도착해 가정을 이루게 되면서 한인 사회가 안정되자 교회를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친다. 험난한 환경에서도 교육에 힘쓰고, 모은 돈을 고국의 독립운동 자금으로 지원하며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이어나간다. 자식을 키운 교육열은 예나 지금이나 한국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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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한인학교 교실 풍경 (한자를 영어로 설명)


하와이 이민사를 뒤로하고 1층으로 내려오면 제3전시실에서 멕시코, 쿠바, 러시아, 중국, 일본, 사할린, 중남미, 독일, 해외 입양까지 다채로운 이민사를 살펴볼 수 있다. 제4 전시실에서는 하와이, 대한민국, 인천을 주제로 선조들의 뜻을 기념하기 위한 기념사업을 중점적으로 소개한다. 1954년 하와이 동포들의 성금을 기반으로 미국의 MIT 같은 공업학교를 세우겠다는 목표로 인천의 하와이란 뜻을 가진 인하공전이 설립되었다. 인천의 하와이는 우리 이민의 역사와 미래발전의 큰 뜻을 품고 있다.


멀게만 느껴지는 해외 이주자들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었다. 10여 년 전 하와이에서 만났던 이야기들과 재회하며 현재의 나를 바라봤다. 남겨진 기록과 정리된 전시를 통해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삶의 흔적이 쌓인 개인과 사회의 역사는 후대에 전해져야 한다.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와 김주혜 작가의 <작은 땅의 야수들>을 읽으며 하와이 1세대 이민자들의 고단한 삶이 떠올랐던 것도 누군가 이들의 이야기를 대서사로 세상에 내놓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태평양의 섬, 하와이의 눈 부시게 아름다운 자연풍경 뒤에 가려진 이민자들의 땀과 눈물이 앞으로도 기억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한국이민사박물관을 다 둘러봤지만, 내 눈에는 예나 지금이나 하와이 이민사만 보여 편파적인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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