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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가면 먹는 소울푸드가 있다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13

by 태화강고래

소울푸드(soul food)

한 번쯤 들어본 말이다. soul이 들어간 음식이라니 특별한 추억이 깃든 음식이나 각 지방의 특색 있는 음식일 것 같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미국 남부 흑인들과 관련된 식문화라고 정의한다. 원래의 뜻에서 벗어나 한국과 일본에서는 "soul"이라는 단어 때문에 "영혼"을 위로하는 음식이라는 뜻으로 쓰인다고 한다. 그런데, 거창할 것 같은 이 음식은 떡볶이, 김치찌개, 김밥, 국밥 등 개인의 취향과 경험에 따라 어느 것이나 영혼을 울리는 음식으로 대접받을 수 있다. 먹고 기분 좋아지는 음식이 아닐까 싶다. 한편, 국립국어원에서는 이 용어를 '위안음식'이라는 순화어로 명명했다(네이버 지식백과). 안타깝게도, 순화어가 어색할 정도로 소울푸드라는 말이 일상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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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병원 식당에서 밥을 먹을 기회는 흔치 않았다. 그것도 혼자서. 그런데, 병원에서 먹는 일종의 소울푸드가 있다. 예약시간보다 30여 분간의 지연으로 애매한 시간에 진료가 끝나자 허기를 달랠 겸 지하 1층에 위치한 익숙한 한식당에 들어갔다. 칸막이가 세워진 1인 좌석에 앉아 사골우거지탕을 주문했다. 삼계탕, 설렁탕, 미역국, 비빔밥 같은 여러 메뉴를 제치고 우거지탕을 먹기 시작한 건 5년 전부터다. 울산에서 서울로 병원 진료를 다니면서 하루를 통째로 병원에서 보내는 날이 다반사였다. 점심 한 끼라도 따뜻한 밥을 먹을 생각에 식당을 찾기 시작했다. 푸드코트, 죽집, 그리고 한식당. 세 곳 가운데 혼자서도 맘 편히, 그리고 대접받는 느낌으로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찾았다. 그래서 택한 한식당이었지만, 프리미엄 한식당을 표방해서 그런지 외부 식당보다는 약간 비쌌다. 그나마, 13,000원에서 18,000원까지 음식 중에서 우거지탕은 10,000원으로 가장 저렴했다. 처음 먹기 시작했을 때는 9,000원이었는데, 그 새 물가상승요인 탓인지 소리 없이 1천 원 인상된 가격이다.


따끈한 국물에 흐물거리는 우거지를 건져 밥과 같이 먹으면 속이 풀렸다. 춥든, 덥든 바깥 기온과 상관없이 피로에 지친 몸과 마음을 난로처럼 훈훈하게 댑혔다. 생기가 돌고, 몸이 충전되는 느낌이랄까. 힘을 불어넣어 줬다. 부산사람들의 소울푸드가 돼지국밥인 것처럼, 내겐 우거지탕이 그랬다. 장거리 진료를 다니는 환자의 우거지상에서 벗어나게 해 준 우거지탕이야말로 내 영혼을 위한 닭고기수프 같은 한 끼 식사였다. 앞으로도 따끈한 국 하면 우거지탕이 자연스레 떠오를 것이다. 우거지탕에게 바치는 시라도 지어봐야 할 거 같다. 유치해서 공개하기는 부끄럽지만.


귀한 소울푸드마저도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는 식당에 가는 게 꺼려져 아쉽게도 발길을 돌려야 했다. 혹시 식당에서 전염될까 두려워 빵집서 샌드위치와 커피를 사들고 야외 벤치에서 하늘과 나무를 쳐다보며 한동안 점심을 때웠다. 아쉽고 또 아쉬웠던 시간도 어느새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고, 이제는 언제든지 병원에서 먹을 수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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