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20
정확히 지난 3월 11일, 화담숲 봄 시즌 예약이 시작된다는 소식을 듣고 알람까지 맞춰가며 설레는 마음으로 방문 예약을 했다. 작년 단풍 시즌에 예약을 놓쳐 아쉬운 마음을 접고 올해는 봄꽃을 즐겨보겠다는 기대를 했다. 마음처럼 한 번에 원하는 시간대에 예약이 되지 않아 약간의 짜증이 입 밖으로 나왔지만 그래도 성공했다는 결과에 만족했다. 그리고 3월 31일을 기다렸다.
그런데. 3월 마지막주가 되도록 봄꽃은 피지 않고 궂은 날씨가 계속되자 과연 예약을 유지할지 취소할지를 두고 전날까지 고민했다. 거의 안 가는 방향으로 마음을 정했으나 가고 싶어 하는 딸을 위해 출발했다. 예약한 바코드를 찍고 입구로 들어서자 7년 만의 방문에도 왠지 익숙한 화담숲의 모습에 설레기 시작했다.
10만 송이 노란 물결의 수선화 축제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온라인상에는 봄을 여는 수선화축제를 홍보하고 있었으나 현실은 역시 따라가지 못했다. 올봄은 어느 해 봄보다 우리에게 인내심과 자연의 순리를 가르치고 있었다. 우리처럼 노랑, 분홍, 초록으로 덮인 완연한 봄의 숲은 아니더라도 그래도 뭔가는 있겠지라는 막연한 희망으로 숲을 찾은 사람들은 지나가며 한 마디씩 했다.
"아직, 꽃이 안 폈네. 삭막하네. 다음주가 지나야지 만개하겠어."
가족단위, 연인과 친구끼리 숲을 찾은 사람들로 산책로는 붐볐지만, 실망한 마음의 크기는 비슷해 보였다. 온라인상에 보이는 수선화 물결은 고지대 일부에서만 볼 수 있었다. 기대에 한참 못 미쳤지만, 그래도 간간이 노란색 수선화가 보이면 우연히 길에서 지인을 만난 양 반가웠다. 그나마 바삐 개화를 한 부지런쟁이 수선화가 고마웠다. 우리처럼 사진을 찍어 감동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수선화의 꽃말은 나르시수스(Narcissus),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자기애에 빠져 죽은 나르키소스라는 청년의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꽃말은 자기 사랑, 자존심, 고결, 신비로 알려져 있다.
화려한 봄의 숲은 만나지 못했지만 의외로 지나쳤을법한 식물들을 관찰하고 여유롭게 산책하는 시간을 가졌다. 햇살도 따뜻해 겉옷도 허리에 묶고 기분 좋게 맑은 공기를 흠뻑 마셨다.
어쩌면 만개한 벚꽃이 없었기에 오늘 우리는 봄을 맞이하는 다양한 꽃과 나무에 평상시와 다른 관심을 줄 수 있었던 것 같다. 항상 그 자리에 있지만, 대표적인 것에 가려 존재감이 적게 부각되었던 숲 속 친구들에게 다정한 눈길과 마음을 줄 수 있어 이 또한 나름대로 의미 있는 산책이었다. 약간 실망스럽게 시작했지만 가족과 함께 숲을 걸으며 편안한 휴식을 맛볼 수 있어 행복한 3월의 마지막날이었다.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의 푸르름은 더욱 빛났고, 하얀색 얇은 껍질이 벗겨지는 자작나무의 신비함도 더욱 낭만적인 산행이었다. 2024년 벚꽃은 동네에서 보자고 이야기하며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