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21
남편에게 올해 꼭 하와이에 가겠다고 선포했을 때, 그는 운전 중이었다. 뜻밖의 이야기에 당황했는지 좌회전 신호를 놓치고 직진할 정도였다.
"가서 뭐 할 건데? 만날 사람은 있어?"
"졸업한 지 오래돼서 더 늦기 전에 한 번은 다녀오고 싶어. 교수님도 뵙고, 친구들도 보고."
그렇게 단순 관광이 아닌 나름의 목적의식을 가지고 하와이 여행준비를 시작했다. 가족이 함께 가는 여행이 아닌 혼자서 떠나는 여행이라 드러내놓고 준비하기에는 미안했다. 아이들이 하교하기 전에 필요한 준비를 하나하나 해 나갔다. 여권사진 찍기, 여권 만들기, 미국 이스타(ESTA) 비자 신청, 항공권과 호텔예약 등 등...
동네방네 시끄럽게 "6년 만에 해외 갑니다!"라고 자랑질은 못하겠더라. 남들은 다 가는 듯한 해외여행이지만, 생활비를 축내가며 갈 생각에 하루에도 몇 번씩 간다 vs 안 간다를 썼다 지웠다 하며 고민했다. 물론, 결론은 간다고 났지만. 그만큼 여행의 의미와 목적을 분명히 했다. 국적기를 포기하고, 숙소 등급을 낮추면서 기본 경비를 아꼈다.
퇴근 후 남편은 무심한 듯, 자주 말을 흘렸다.
"하와이 가는 거 맞아? 준비는 하고 있어?"
"응. 가지. 준비하고 있어."
티 안 나게 준비하는 데 성공했다. 아무도 모르게. 출국일이 다가오자 주말에 남편은 낡은 캐리어를 끌고 나와 점검을 시작했다. 결혼 후 출장과 여행 때마다 사용한 캐리어의 손잡이가 덜렁거리며 접고 펴는 게 뻑뻑했다.
"캐리어 손잡이가 말썽을 부리면 팔도 아프고 힘도 없는데 답이 없을 거 같아. 이 참에 캐리어 하나 사자."
나를 걱정하는 그의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혹시나 생길 어떤 상황이라도 미리 막아주고 싶은 남편의 마음이 부모마음처럼 느껴졌다. 이리저리 만져보던 남편은 아무래도 안 되겠다고 하며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그러다 택배가 늦어질 거 같다며 당장 근처 아울렛 매장으로 가자고 했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갑자기 차를 타고 달려가 인터넷으로 검색한 캐리어를 사들고 왔다. 무관심한 듯, 그러나 가족이기에 관심이 없을 수 없는 특별한 사이임은 분명했다. 10년 넘게 부부로 잘 살아왔구나라는 생각에 흐뭇했다. 마음이 따뜻해지며 동시에 미안하기도 했다.
"고마워."
"안전하게만 다녀오면 돼."
"근데, 미국비자받았어?"
"그럼. 했지."
하나씩 체크받는 기분이 참 좋다. 간섭이 아니라 관심이라서.
'혼자 가니 걱정해 주는 그 마음 잘 받을게.
안전하게 잘 다녀올게. 그동안 집 잘 지켜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