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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Apr 21. 2024

추억여행은... 만족? 후회? 치유?  

하와이여행기 6

추억여행이라는 걸 별로 해본 적이 없이 살았다. 그만큼 여유가 없이 살았단 증거겠지. 가끔 예전에 살던 동네나 대학시절 자주 다니던 거리를 지나면서 변화된 모습을 보며 세월이 참 많이 흘렀음을 느다. 작년에 버스 안에서 차창으로 본 이대 앞 풍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여대생이라면 한 번쯤 가봤을 번성했던 상점과 활기찬 거리 사라지고, 임대 딱지로 덮인 버려진 상권을 보며 그때 그 시절이 떠올랐다.


하와이...

2005년부터 2007년 말까지 살던 곳이다. 갑자기 유학을 가보겠다는 결심으로 겨우 몇 달 준비하고는 일단 떠나보자는 생각에, 아시아계 미국문학이라는 관심 있는 분야라 끌리고, 아시아인으로 장학금까지 준다 해서 하와이주립대학교로 떠났다. 지금 생각해도 특이한데, 그 당시에는 더 특이한 학생이었다.


"남들 신혼여행 가는 하와이서 공부를 한다고요? 대체 무슨 공부를 하죠?"


이런 반응에 나 자신이 외계인이 된 양 부끄러울 정도였다. 하와이대학에서 이민자들의 삶을 보고 배우며 가족 같은 한인 3세 교수님과의 인연을 맺으며 오길 잘했다, 학이라는 미지의 영역은 경험해 봤구나 하며, 마지막 졸업 논문은 가슴 뛰게 뛰어다니며 열심히 노력해서 완성했다. 그런 공부였음에도 나를 끝까지 힘들게 했던 것은.


"하와이대학 박사해서 뭐 할 거냐?

 하와이대신 뉴욕주립대에 갔으면 영어강사라도 하지?"


주위의 말들에 사로잡혀 떠날 때와는 달리 박사까지 끝까지 갈 용기가 없었다. 매일 변함없는 날씨와 학교, 집으로 반복되는 일상에 내 젊음이 너무 아까운 듯 마음이 힘드니 몸도 쉽게 지치게 만들었다. 밖은 화창한데 도서관은 냉동고 같아 겨울 후드티를 입고 몇 시간씩 앉아있다 나오면 현기증이 나기도 했다. 결국 만족스럽게 졸업은 했지만 하와이에서 계속 살고 싶지 않다는 고민에 고민을 거쳐 귀국했고 일하고 결혼하고 지금껏 살았다.


하와이대학교 영문과에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한국학생이 딱 두 명 있었다고 들었다. 2년 먼저 박사과정으로 온 언니와 석사과정인 나다. 지금 난 주부로 살고 그 언니는 내가 떠난 후 4년 정도 있다가 박사학위 받고 귀국 후 지방의 대학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다. 중도포기자와 끝까지 간 자의 다른 인생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제 40대 후반쯤 되니 사회 곳곳에서 커리어를 잘 쌓고 살아가는 그때 그 시절의 친구나 선후배가 많이 보인다.


가지 않은 길로 남겨둔 여러 길 중에서 지금껏 나를 뒤돌아보게 하는 건 하와이대학에서의 박사과정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그때의 나를 만나러 굳이 와이키키에서 벗어나 일상이 펼쳐지는 마노아에 있는 하와이주립대학교에 갔다. 


가장 먼저 눈에 보인건 매일 들렀던 냉동고 해밀턴 도서관이었다. 입구에 벚꽃처럼 활짝 핀 분홍꽃은 예나 지금이나 활짝 피어있었다. 1년 내내 큰 기온변화가 없는 하와이에도 봄이 찾아오면 봄꽃들이 폈고, 벚꽃 핀 한국을 느끼게 했던 그대로였다. 갑작스레 스콜처럼 쏟아지는 비도, 눈부신 햇살도, 오래된 고목들도 그대로였다. 도서관에 들어가 보니 예전과 달리 도서관 온도는 냉동고가 아닌 견딜만한 냉장고였고 곳곳에 공부할만한 좌석이 더 배치되어 있었다. 



해밀턴 도서관 외부와 내부 서가                                                                 


 life history 건물(예전에 없던 새 건물인 듯)
낡은 인문대 건물 내부(왼쪽)와 사회과학대학 건물(오른쪽)


세월의 흐름을 반영한 듯, 그대로 나이 들어간 건물과 새로 생긴 건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한국이든, 하와이든, 문과의 영광은 옛말인 듯, 낡고 부식된 건물이 점점 흉물스럽게 변해가고 있어 안타까웠다. 영문과 교수진도 20 여전 전에 비해 반으로 줄었다는 소식도 이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었다. 


하와이에 도착해 교수님과 이민사 연구선생님을 뵈었다. 두 분 다 하와이의 변함없는 풍경처럼, 70대와 80대라는 연세가 믿기지 않을 만큼 여전히 본인들의 업에 충실히 매진하고 계셨다. 한국계 미국인 게리 박 교수님은 입학을 시작으로 졸업 후에도 살뜰히 나를 챙겨주시는 분이다. 이번 여행을 통해 졸업 후 처음으로 하와이에서 직접 뵈니 감회가 새로웠다. 코로나 전까지 1년에 한 번씩 한국에서 뵐 때와는 다른 기분에 과거 그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출판의 기회가 있었으나 육아와 집안 사정으로 미뤄둔 내 졸업논문을 지금이라도 손질해 보자는 제안에 감사했다. '그때 마무리 지었으면 지금까지 미련이 없었을까? 또 다른 기회가 열렸을까?' 지나고 후회해 소용없는 감정에 잠깐 머물다 나와 교수님이 제안하신 것을 마침표를 찍는 퍼포먼스로 마무리를 짓겠다고 약속했다. 


이민사 연구선생님은 이제 이민사 연구분야에서 꽤 유명인이 되셨다. 처음 뵀을 때와 다를 바 없는 외모와 열정에 80대라는 연세가 믿기지 않았다. 


"you는 이 분야 개척자였잖아. 하다 말아서 지금 job이 없지, 관련된 경력이 없잖아. 

 애들 데리고 와서 여기서 박사해. 그래야 될 거 같네."


너무도 직설적으로, 사실적으로 아픈 데를 꼭 집어 말씀하시니 할 말이 없었다. 남도 알고, 누구보다 내가 잘 아는 현실인데. 그 말을 확인하기 위해 하와이로 왔다. 뻔한 조언일 수밖에 없는 3자의 조언 앞에서 할 말이 없었다. 




누가 뭐라 해도 자기 자리에서 꾸준히, 열심히 한 사람을 이길 자는 없다. 나이가 들면서 곳곳에서 확인하며 살고 있다. 고목처럼 산 사람에게 자꾸 무심코 쏟아내는 내 속의 존경심과 부러움을 숨길 수가 없다. 길이 아닐 때는 멈추고 다른 길로 갈 용기가 필요하고, 이거다 싶으면 계속 눈과 귀를 막고 갈 용기가 필요하다는데, 부끄럽게도 나는 무엇이 있었나 싶다. 아직도 비교하는 마음을 못 내려놓고 사는 못난 인간임에는 틀림없다. 누구에게나 밀려왔다 가는 파도에 잘 대처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수없이 많은 발자국이 남은 해변의 모래는 이른 아침 나처럼 혼자 바다를 바라보고 해변을 걷는 수많은 사람들이 남긴 마음의 흔적 같았다. 







"플랜 A는 나의 계획"

 플랜 B는 신의 계획"

 이라는 

 류시화 시인의 산문집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를 읽었다. 나를 위로할 말을 찾고 싶었다. 


인생은 길을 보여 주기 위해 길을 잃게 한다. 돌아가는 길투성이의 인생에서 뜻대로 되지 않는 일과 행복한 일은 동시에 일어난다. 플랜 A보다 플랜 B가 더 좋을 수도 있다, 가 아니라 더 좋다. 플랜 A는 나의 계획이고, 플랜 B는 신의 계획이기 때문이다. (181쪽)


수학문제처럼 답이 있으면 좋으련만, 답이 없는 각각의 인생 질문에 내 물음의 답은 내가 찾아야 한다. 힘들 때마다 위로와 용기의 말을 찾아 인생의 길을 헤쳐나가야 한다. 그렇게 하와이 추억여행은 저물어갔다. 당장 이 여행을 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미루는 것보단 한 발짝이라도 떼보는 게 낫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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