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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Apr 25. 2024

날아갈 힘이 있는 글을 쓰고 싶다.

아침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25

산책을 나섰다가 구립 도서관에 들렀다. 딱히 어떤 책을 보겠다는 생각으로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매번 그렇듯 자연스럽게 들어섰다. 1층은 어린이 도서, 2층은 인문, 3층은 사회 및 기타 도서로 분류된 3층짜리 도서관에는 수험서를 펴서 공부하고 책을 읽으며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사람들의 모습이 곳곳에 보였다. 서가에 꽂힌 수많은 책들을 눈으로 훑으며 어찌 보면 시간을 낭비하는 행위를 자주 한다. 


'언제 봐도 참 많기도 하다. 매번 느끼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책은 쓰이고, 출판되고, 서점과 도서관에 신간으로 자리를 잡고 있겠구나.' 


당연해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데 올 때마다 순진한 아이처럼 책의 다양성과 방대한 양에 압도된다. 과연 모래사장에 펼쳐진 모래 같은 책들 가운데 얼마나 제대로 찾아 제대로 읽어낼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떤 주제로 어떤 글을 써야 사람들이 손을 뻗어 읽으려 할까. 브런치에 일기 같은 것을 공개적으로 끄적이는 나는 무엇을 위해, 어떤 목표로 쓰고 있는 것일까. 도서관에 오면 지적 호기심이 발동하다가도 심적 희망은 쪼그라든다. 그러다가도 현실로 돌아온다. 그냥 내가 좋아서, 쓴다는 행위를 통해 나를 알아가고 흔적을 남기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것인데, 뭘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냐라고, 내 옆구리를 스스로 찌르며 분위기를 애써 바꾼다. 내 생각과 내 느낌을 주변 사람들이 아닌 낯선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행위 자체가 글을 쓰면서 생긴 변화 중의 변화다. 목소리가 생겼다. 소소한 일상의 성취로 자리 잡아가는 글쓰기를 통해 마치 세상이 알아주는 작가가 된 양 읽어주는 분들 덕분에 매번 놀라고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세상의 모든 존재하는 물질과 현상에 있어서 취향이 존중받는 세상이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네가 좋아하는 것이 달라도 다름을 예전에 비해 인정한다. 딸과 엄마의 음악적 취향은 서로 다른 음악이 존재하는 것이기에 가능하다. 내가 좋아하고 읽고 싶은 글이 있듯이 누군가 단 한 명이라도 내 글을 읽고 공감해 주면 그걸로 될 거 같다. 


남편이 어젯밤 인터넷 게시판에서 본 글이라며 나에게 보여줬다. 유방암에 걸린 할머니가 쓴 시였다. 시라고 하지만 화려하거나 색다른 표현이 있는 글도 아닌데, 그냥 마음이 짠하고 먹먹해졌다. 할머니의 혼자 남은 심경이 나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그런 거였다. 읽고 공감할 수 있는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힘. 독자의 마음 한구석을 파고들어 단 1초라도 흔들 수 있는 힘. 


인터넷에서 본 유방암 걸린 할머니 시 (2024.4.24일 자)



화려하게 뭉쳐서 꽃을 피우는 철쭉이 사방천지에 가득한 봄인데 마른땅 곳곳에 노란 민들레가 존재감을 드러낸다. 노란색 꽃이 지고 생긴 하얀 털뭉치로 장식한 듯한 민들레도 보이기 시작했다. 홀씨인 줄 알았는데 홀씨가 아니라 씨앗들이 엉켜있는 하얀 털뭉치로 바른 표기법은 '상투털'과 '갓털'이란다. 민들레는 꽃이 피는 식물로 당연히 씨앗으로 번식하는 게 맞아 홀씨라는 표현이 틀린 것인데도 "민들레 홀씨되어"라는 노래 때문에 으레 홀씨라고 여겨진다고 한다. 올바른 표현으로 우리말을 사용하는 게 적절하겠지만, 예술적 표현을 위해서는 예외를 주는 센스가 돋보인 거 같다. 바람에 흩날리는 민들레의 갓털처럼 유방암 할머니가 쓴 시도 인터넷을 통해 여기저기로 날아가고 있었다. 나한테까지 온 것을 보면. 투박해 보이는 할머니의 시를 통해 글의 힘을, 글의 무한한 날갯짓을 느꼈다. 그래서 소망한다. 내 글이 이런 힘을 가질 수 있기를. 그래서 계속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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