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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Apr 24. 2024

15주년을 맞는 봄이 왔다.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24

지난주는 우리 부부의 결혼 15주년이었다. 

안방 침대에 네 식구가 다 같이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의 학교와 학원생활 이야기를 한참 하던 끝에 남편이 말을 꺼냈다. 


"엄마아빠가 결혼한 지 15년이 되었어. 놀랍지?"

"축하해야겠네요!"

"할머니 할아버지는 50년 넘게 함께 살고 계시지."

"진짜요?"

"아빠 나이가 50이 넘었잖아."

"맞네. 50주년을 금혼식이라고 하잖아. 25주년은 은혼식이고. 우리처럼 15주년을 기념하는 말이 있었나?"


처음으로 15주년을 기념하는 결혼 주기별 명칭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동혼식/수정혼식이었다. 보통 부부가 연수가 쌓일수록 의미 있는 선물을 주고받으며 축하하는데 대표적인 기념일이 은을 선물하는 은혼식, 금을 선물하는 금혼식이 있다. 그러면, 우리는 수정을 선물해야 한다는 말인데... 결론을 말하자면 수정선물은 없었다. 결혼 5년 차까지는 자그마한 선물이라도 주고받았는데 어느샌가 선물은 사라지고 그날을 기억하며 외식을 하고 케이크를 부는 행사가 되었다. 서프라이즈 이벤트도 없다. 무덤덤한 듯하면서도 잊지 않고 변함없이 같이 밥은 먹는다. 올해는 특별하게 보낼까?


되돌아가 지나온 세월을 되짚어봤다.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었을까? 2019년 봄, 두 번째 암 수술 후 결혼기념일을 맞아 병원 휴게실에서 남편하고 케이크를 나눠먹었다. 착잡한 마음에 그래도 죽지 않고 살아서 같이 있으니 다행이라고 하면서. 어린아이들은 울산집에 두고 내 옆을 지켰던 남편과 케이크를 마주하고 더 이상 아프지 말자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내가 아프기 전까지 우리 집은 딱히 걱정이랄 게 없이 무탈하게 살던 가정이었다. 그동안의 일상이 얼마나 큰 행복이었던지를 절실하게 배우고 느꼈던 시련 중의 역대급 시련이었다. 그때가 결혼 10주년이었더라. 그땐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 


올해 15주년을 맞이하며 생각했다. 특별한 사건사고 없이 머릿속에 흔적을 남기지 않고 지내는 게 선물이라고. 시부모님처럼 그렇게 한 해 두 해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기억나는 이벤트 없이 우리의 인생이 흘러가길 바랄 뿐이다. 무던하게 한 배를 타고 온 그에게 감사했다. 감정기복이 있는 나와 달리 때론 지루할 정도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가 큰 나무처럼 서 있어 내가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작년과 달리 올해는 집에서 가족모두가 뒹굴고 장난을 칠 수 있어 뿌듯했다. 남편 혼자 울산에서 지내지 않은 게 가장 큰 선물이었다. 외식하고 케이크 사는 것을 하나로 엮어서 근처 애슐리에 가서 각자 취향대로 골라서 배불리 먹었다. 조각케이크를 여러 개 붙여서 먹으며 달콤한 기분을 추가로 업시켰다. 특별하게 보내고 안 보내는 건, 선물보다는 마음에 달려 있다. 어떤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무엇이 중요한지만 알고 살면 된다. 이 마음만은 변치 않기를 바라며 맛있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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