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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Apr 23. 2024

식집사가 되어볼까?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23

처음이다.


진심으로 식물을 키워보겠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에 엄마는 베란다에서 여러 가지 식물을 키워 온실 같은 분위기를 조성했고, 남동생도 엄마를 닮았는지 결혼 후 테라스에서 상추와 방울토마토를 비롯한 식물들을 잘 키워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나와 달리 참 부지런하다고만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집에서 식물을 몇 번 키워봤지만 매번 실패한 흑역사 덕분에 난 자식 말고는 어떤 것도 키우지 않는다. 반려동물을 키우자고 조르는 딸의 제안도 변함없이 사양한다. 돌보는 일도 힘들거니와 듬뿍 정을 떼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어릴 경험해 봤기 때문에 우리 집에서는 키울 없다고 단호하게 얘기한다.


지난주에 딸은 학교에서 방울토마토 씨앗 5개를 받아 왔다. 참깨보다 더 작은 씨앗을 숙제라고 하면서. 집에서 키우고 관찰한 결과를 사진으로 학급방에 올리라는 과제였다. 작년에는 완두콩을 학교에서 심어서 가져오더니 올해는 아예 씨앗만 받아왔다. 시큰둥한 나와 달리 딸은 시작부터 열의로 가득 찼다. 버리지 않고 한쪽에 뒀던 작년에 완두콩을 심었던 화분과 남아있던 흙을 꺼냈다. 지극 정성을 들이는 딸이 기특하고 신기했다. 몸이 안 좋아 귀찮기도 했지만 딸을 도와서 화분에 흙을 넣고 씨앗은 딸이 직접 간격을 띄어 5개를 안착시켰다. 마지막으로 물도 듬뿍 주고 햇볕이 잘 드는 주방 창문 앞에 두었다. 


"싹이 빨리 났으면 좋겠어요. 안 나오면 어떡해요?"

"나오겠지."

"엄마, 제가 잊어버려도 물 주는 것 잊지 마세요. 꼭이에요."


내 맘속에서도 내심 걱정이었다. 

'5개 중에 1개라도 싹을 틔어야 할 텐데. 안 나오면 실망이 클 텐데...'


그렇게 하루하루 화분을 살피고 물을 줬는지를 물어보며 5일이 지난 어제였다. 


"엄마! 싹이 났어요! 그것도 3개나요!"

"진짜! 정말 신기하다! 우리가 심은 게 싹이 났네!"


첫째 날


딸의 흥분만큼이나 오랜만에 새싹을 본 내 마음도 살아났다. 똥손이어도 싹이 돋네! 숙제로 올린다고 사진을 찍는 옆에서 나도 슬쩍 사진을 찍었다. 오후에 주방에서 보니 어제보다 1센티 정도는 더 자란 게 눈에 보였다. 크구나! 이 맛에 식물을 키우는 건가? 내일은 얼마나 더 클까? 이전과는 다른 성장의 기운이 나에게 직접 느껴지는 게 놀라웠다. 


둘째 날


숙제라서 대충 키우는 게 아니라 이번에는 진심으로 딸의 방울토마토 새싹들을 잘 키워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초보도 잘 키울 수 있는 공기정화식물을 하나 사다 방울토마토 곁에 두기로 마음먹었다. 처음 아픈 것도 아닌데, 이번에는 쉽사리 기운이 되살아나지 않았다. 여행 탓인지 한동안 몸이 안 좋아 집에만 있다 보니 바깥이 초록초록 세상이 되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동안 귀찮아서, 돌보는 일을 하기 싫어 피했던 식물 키우는 일을 나를 위해서 시작하기로 했다. 초록의 싱그러운 생명력을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전달받고 싶어서. 그렇게라도 성장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나를 키우고 싶다. 아플 때마다 축 쳐지는 나를 일으켜 하루하루 살아갈 힘을 보충받고 싶은 욕심으로 식집사가 되기로 했다. 동반성장, 상생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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