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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Apr 28. 2024

나란히 걷는 행복

아침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28

기억 속 아빠는 늘 엄마를 외롭게 했다. 한 번도 단 둘이 '데이트' 목적으로 외출한 적이 없었다. 


"풀빵이라도 같이 사 먹고 들어오고 싶었는데 한 번도 못해봤어."

라는 엄마의 채워지지 않는 아빠의 사랑은 영원히 무관심으로 남았다. 먹고살기 바빠서 그런 여유라는 게 없었다고, 그만하면 가족에게 잘해준 거 아니냐고 돌아가신 아빠가 변명을 하신다 해도 딸들이 보기에 아빠는 잔정이라고는 없는 무심한 남편이었다. 먹고살만해진 이후에도 아빠는 엄마와 나가지 않으셨으니까. 그런 부모의 영향 탓인지 우리 자매는 어릴 적에 미래 남편의 조건 중 하나로,


"같이 공원을 걸을 수 있는 사람을 찾아볼꺼야"였다. 


우리 자매의 작은 바람은 다행히 이루었다. 아빠와 달리 남편도, 제부도 부인과 공원을 걸을 만큼 시간과 관심이 있는 사람이다. 아이들이 어릴 적엔 가족모두가 공원을 산책했다. 주로 광교호수공원에서 주말을 보냈고, 울산에 내려가 살 때는 울산 선암호수공원을 찾았다. 도심 속 호수와 어우러진 풍경은 뉴욕의 센트럴파크만큼이나 좋은 휴식처였다.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면서 어느덧 둘이 다니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었다. 나란히 걸으며 세상 이야기를 하고, 풍경을 보는 재미가 있어 공원에서 산책을 즐기는 편이다. 



시험을 마친 남편과 함께 발걸음도 가볍게 말로만 듣던 동탄 호수공원에 갔다. 피크닉장소로 유명하다길래 길을 나섰다. 용인수지에서 동탄 호수공원까지 내비게이션 정보로 30분 거리였다. 신도시답게 잘 뚫린 넓은 도로와 늘어선 신축 아파트들이 인상적이었다. 호수를 둘러싸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공원 곳곳에서 돗자리를 깔고 작은 식탁을 세워놓고 피크닉을 즐기는 가족들이 많이 보였다. 유모차를 끄는 젊은 부부와 유치원생 아이들로 공원은 초록초록한 풍경만큼이나 푸릇푸릇했다. 





"젊은 사람들이 많네. 광교호수공원을 찾는 사람들보다 훨씬 젊어 보여. 우리만큼 나이 든 사람들도 찾기 어려울 정도네."

"평균 연령이 34세래. 신도시라 도시만큼 거주자들도 젊어."


그랬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만큼 젊음이 느껴졌다. 주말 오전 여유롭게 쉬는 사람들의 모습이 평화로운 호수와 잘 어울렸다. 잘 정돈된 데크 산책길을 따라 40여분을 걷고 근처 상가에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왕갈비칼국수라고 크게 입간판이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 주문했다. 생각보다 푸짐한 고기에 배불리 잘 먹었다. 아이들은 집에 두고 둘이 점심을 먹고 갈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데이트의 마무리는 매번 먹는 것으로 장식했다. 오늘도 그랬다. 둘이 걷고 마주 앉아 이야기하며 먹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부부의 정을 오늘도 한 겹 쌓고 돌아왔다. 남는 건 부부뿐이라는데 그 말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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