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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Apr 27. 2024

나는 할머니다.

아침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27

4살 어린이를 본 게 얼마만인지.

아이들이 훌쩍 커버리자 친척가운데서도 갓난아기는커녕 어린이집 다니는 아이를 구경하기도 힘들다.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지 않고 결혼도 안 하고 있어 그만큼 아이들이 귀한 세상이 되었다. 아파트에서 스쳐 지나가는 아이들을 보는 게 전부다.


촌수로 따지면 나와 6촌 사이인 남자아이를 처음 만났다. 그 아이의 엄마는 나와 5촌 사이. 촌수로는 꽤 먼 사이다. 큰 외삼촌의 큰 아들의 큰 딸의 아들. 우리는 그런 사이다. 멀디 먼. 정식으로 나를 고모할머니라고 불러야 하지만, 차마 할머니라고 부르긴 뭐 해 왕고모라 부르기로 했다.  40대 후반도 할머니가 되지만 난 아직은 아니라고 웃으며 패스했다.  엄마병원을 찾은 아이의 외가식구들과 여름 같은 4월 주말 오후에 만났다.

 

보자마자 생글생글 웃으며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배꼽인사를 하는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가장 먼저 엄마와 눈을 맞추고는 왕고모할머니라고 애교 가득 넘치게 불렀다. 그야말로 아기가 꽃 중의 꽃이요, 스타 중의 스타였다. 요양병원 근처 카페에 오랜만에 다 같이 모였다. 엄마와 나, 그리고 아이의 가족과 외가식구들, 10명이 둘러앉았다.


"우리 왕고모할머니 생일축하합니다!"


"우리"라는 말에 빵 터졌다. 언제 봤다고, 우리 왕고모할머니라고 하는지. 사회성이 기막혔다. 아는 노래가 별로 없어서 생각나는 대로 생일축하노래를 불렀는데, 호응이 좋으니 박수까지 유도하며 10번 정도는 불러댔다. 앙증맞은 고사리 손으로 손뼉 치고, 웃어주고, 모두들 아이에게 푹 빠졌다. 본인의 인기를 의식한 연예인처럼 아이의 목소리도 눈을 맞춰가며 커져갔다. 

   

아이의 외할머니는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시집와서 찻길 하나를 두고 살면서 어느 친척보다 가깝게 지냈다. 우리 엄마가 시고모였지만, 7살 차이의 큰 언니같이 잘 따르고 집안대소사를 함께 챙기는 사이가 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 건설현장에서 일했던 아이의 외할아버지는 결혼 후 우리 아빠의 작은 건설회사에서 일했다. 내가 10살 때 태어난 아이의 엄마는 촌수로는 멀게 느껴지는 고모라는 호칭대신 편하게 "언니"라고 부르며 서로의 성장을 지켜봤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결혼까지 5촌이지만 사촌보가까운 이웃사촌처럼 왕래하며 살다. 주말마다 함께 뒷산에 가고 하산 후 우리 집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는 건 일상이었다. 우리 집에서 먹은 밥만 해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그 시간이 헛되지는 않았는지 우리 엄마를 잊지 않고 연락하고 찾아온다. 


어느새 소리 없이 시간은 흘러 10살이었던 내가 동생을 제외하고 처음 봤던 기억 속의 아기는 40세를 바라보는 아기엄마가 되었다. 70세가 넘은 우리 엄마의 눈에는 새색시였던 아기의 외할머니가 아이를 낳고 키우던 모습이, 그리고 그 아이가 아이를 낳아 오늘 엄마 앞에 나타난 것이 새록새록 신기하고,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오늘 갑자기 고모할머니가 되었고, 엄마는 왕고모할머니가 되었다. 6촌 아이도 이리 귀여운데 자기 손자면 얼마나 사랑스러울지, 무뚝뚝한 아이의 외할아버지를 보니 말이 필요 없었다. 지난 설날에 외박 나오신 엄마를 방문했을 때 같이 오지 못한 아이와 영상통화를 할 때 지켜보던 우리 식구 모두를 놀라게 할 정도였다. 저런 모습은 난생처음인데. 반짝이는 햇살에 언 눈이 살살 녹듯  아이는 외할아버지를 손자에 푹 빠지게 만드는 마법 같은 존재였다.


우리는 그렇게 하루하루 손잡고 나이 들어가고 있었다. 오늘이 남아있는 날들의 가장 젊은 날이었다. 아이하나 등장했을 뿐인데,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끼는 시간이었다. 할머니가 되고 싶진 않지만, 오래간만에 가까이서 본 아이의 미소와 몸짓에 내 마음도 빠져들었다. 내 자식 키울 때의 시간은 다 어디로 가고, 남의 자식이 귀엽게 보이는 그런 나이가 되었다. 겉으로는 할머니가 아닌 척했지만, 속으로 나는 이미 할머니였다. 아이보고 뿌듯해하는... 그런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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