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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May 19. 2024

하필 그날, 그날만 날씨가 안 좋았다.

아침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40

낮 기온이 25도 이상을 넘는 화창한 날씨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그때도 지금처럼만 좋았다면, 그날이 더욱 완벽했을 텐데. 애써 아무리 포장해도 아쉬움은 가려지지 않는다.


작년 말 남편은 갑자기 쏠비치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스 산토리니 마을을 옮겨놓은 듯한 리조트로 유명하다며 나의 관심을 끌어당겼다. 포카리스웨트 광고로 유명세를 탔던 하얀 외벽과 파란 지붕의 조화가 돋보이는 산토리니. 꿈에서나 가볼까 말까 하는 산토리니 마을을 모티브로 조성되었다는 쏠비치 삼척을 가보겠다고 어렵사리 예약했다. 유명한 숙소를 예약할 때마다 매번 느끼지만, 부지런한 사람들이 봄부터 여름까지 주말 예약은 다 찜해서 겨우 하나 남아있던 부처님 오신 날에 떠나게 되었다. 


오후 3시경에 비 예보가 있어 도착하자마자, 남편은 아이들을 데리고 워터파크로 향했다. 오랜만에 함께 여행온 아들은 코로나 19 이후 처음으로 물놀이를 한다고 살짝 들떠 있었고, 딸은 오빠와 같이 놀 수 있다고 더 붕붕 떠있었다. 물속에 들어갈 수 없는 나를 대신해 남편이 아이들의 보호자 역할을 했고, 나는 덕분에 혼자만의 자유시간을 가졌다. 


당연히 산책에 나섰다. 여유롭게 해안 산책길을 따라 걷다 보니 쏠비치의 유명한 카페로 이어졌다. 마마티라라는 오션뷰 카페로 아기자기한 데코레이션이 동화 속 마을을 방문한 듯 인상적이었다. 한참 사진을 찍고는 거센 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앉아 그냥 가긴 아쉬운 마음에 뷰 값을 하는 비싼 커피 한잔을 마셨다. 먹구름이 몰고 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바라본 하늘과 바다도 역시 서서히 변하고 있었다. 



  


서둘러 발걸음을 옮겨 산토리니 광장에서 유명한 상징물인 종을 보자 비가 한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올 것이 왔다! 한두 시간이라도 조금만 더 즐길 여유를 주지. 산토리니 광장을 혼자서 걸으며 남편과 전화했다. 비가 오니 실외 풀장에서 실내로 자리를 옮겼다고. 산토리니 광장을 뒤로하고 실내로 들어와 체크인을 기다렸다. 혼잡한 로비에서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렸다. 


산토리니 광장 



물놀이를 마치고 재회한 가족들과 숙소로 들어가 짐을 풀었다. 창밖으로 세차게 내리는 비가 텅 빈 산토리니 광장을 적시고 있었다. 비가 안 왔다면, 사람들로 가득했을 광장이 쉬고 있었다. 조명이 켜진 밤의 산토리니 광장 풍경이 멋지다고 하던데... 숙소에서 혼자 연신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흐릿해지면서 밤은 점점 깊어져갔다. 

 

쏠비치 삼척 야경(숙소에서 바라본 풍경)


삼척해변가에 위치한 해천탕 전문식당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돌아와 숙소에서 그냥 쉬었다. 이런 여행은 처음이라 낯설었다. 호캉스도 아니고 콘도방에서 집에서처럼 시간을 보내는 건 어쩐지 어색했다. 아이들은 하던 대로 게임에 유튜브 시청에 크게 지루해하지 않았다. 남편도 아이들처럼 쉬면서 핸드폰을 보면서 편안해 보였다. 오직 나만 불편했다. 백 년 만에 티브이 채널을 돌리며 볼 만한 프로그램을 찾았지만 마음을 끌만한 채널고정에 실패했다. 핸드폰을 잠시 보다 그냥 잤다. 다음날도 비가 온다 했다.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아들학교에 행사가 있어 12시 반까지 모임장소에 도착해야 하는 일정이라 더 이상의 미련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쉬면 되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푹 잤다. 


아침 바다는 전날보다 한층 더 거센 파도로 일렁이고 있었다. 




비 오는 날의 여행. 운치가 있으면 좋으련만. 실상은 딱히 애들 데리고 갈 만한 곳도 없어 아쉬움 가득한 여행이었다. 콘도 주변에서 서성거렸다. 바다를 보고 하룻밤을 집 밖에서 잤으면 됐지라고 말하기엔 함박웃음꽃을 피우지 못한 부족한 여행이었다. 그날에 빗님이 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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