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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May 18. 2024

조심하자, 체험학습

아침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39

중학생이 된 아들은 놀이공원으로 첫 체험학습을 떠났다. 답답한 교실에서 벗어나 친구들과 논다는 생각에 지난주부터 기대하고 기다렸다. 이번주는 공휴일, 학교에서 반나절 장기자랑, 체험학습으로 마무리하며 3일을 연달아 가볍게 보낼 수 있는 특별한 평일이라 그럴 만했다. 푸른 5월, 친구들과 추억을 만들 수 있어 나도 덩달아 설레었다. 중학생이라고 도시락을 안 싸가고 조별로 사 먹기로 결정한 것도 고마웠다. 엄마는 도시락 걱정 안 해 좋고 아들은 먹고 싶은 걸 마음대로 골라 먹을 수 있어, 몸도 마음도 가볍게 집을 나섰다. 잘 다녀오라는 말을 들으며. 


엄마는 오후에 가볍게 탄천 산책을 하며 곳곳에 만발한 장미덕에 기분 좋은 시간을 보냈다. 대학생 때 친구들과 에버랜드 장미축제며 튤립축제를 다녔던 시절이 자연스레 떠오르며 서울랜드에서 잘 놀고 있을 아들을 생각했다. 



3시가 넘어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출발한다는 전화이겠거니 했는데, 갑자기 담임선생님을 바꿔주었다.


"선생님.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어머니, oo 가 다쳐서 연락드려요. 의무실에는 다녀온 거 같은데, 놀라실까 봐 전화드려요."

"네? 많이 다쳤나요?"

"넘어져서 손바닥을 쓸린 거 같아요, 살펴보고, 연락 주세요."


갑자기 다쳤다는 전화에 평화롭던 오후의 장미효과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넘어져서 살짝 까졌겠지, 별일 아니겠지라고 마음을 다잡고 학원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 

 

아들의 오른손은 붕대에 감겨있고, 왼손에는 플라스틱 장검이 들려 있었다. 어디서 어떻게 얼마나 다쳤는지가 궁금한 엄마 마음에는 눈에 보이는 칼이 걸리적거렸다.


"피가 손목을 타고 흐를 정도로 많이 났어요. 의무실에서 붕대는 감았는데 병원에 가보래요. 분수대 앞에서 달리다가 넘어졌어요."


일단 검색해 둔 피부과에 들어갔다. 정형외과도 같이 진료한다고 해서 들어가 의사 앞에 상처를 보였다. 피범벅이 된 곳을 식염수로 닦아내자 손바닥 끄트머리에 2군데가 움푹 파여 피가 고여 검게 보였고, 주변부의 상처도 꽤 아파 보였다. 지혈을 하더니 갑자기 레이저를 10여분 쏘였다. 꿰맬 정도는 아니니 지켜보면서 레이저 치료를 꾸준히 하면 흉터가 거의 없어질 거라고 했다. 졸였던 마음을 약간 풀어 안심하고, 햄버거 가게로 들어갔다. 점심도 못 먹고 왔다는 말에 조용히 좋아하는 치킨버거세트를 사줬다. 롤러코스터 줄이 길어 1시간 반 만에 겨우 탔는데 밥 먹기 전에 잠깐 장난치다 넘어져 이 시간이 되었다고 하는 말에 할 말이 없었다.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갑자기 넘어져 피를 많이 흘려 주변사람들이 다 쳐다볼 정도였다고 하니 얼마나 무서웠을까.


피부과 처지를 한 손바닥에서는 피가 계속 새어 나왔다. 다시 뭔가를 해야 할 거 같아 진료받은 피부과에 전화를 했다. 듀오덤을 갈아 주라는 말에 그러려니 하고, 근처 약국에 갔더니 없다고 했다. 피를 닦기 위해 휴지만 얻어서 집 앞까지 걸어와 평소 자주 가는 약국에 들렀다. 피가 새어 나오고 이미 피가 시커멓게 뭉쳐있었다.


"이거, 빨리 병원 가세요. 근처 피부과라도 다시 가세요."


또 다른 집 근처 피부과로 갔다. 미용에만 신경 쓰는 피부과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급한 마음에 한 군데 찾아들어갔다. 10여분 기다린 끝에 만난 의사는 대충 눈으로 살펴보더니,


"이미 한번 피부과에서 처치를 했고 피가 계속 나니 응급실로 가세요. 유리가 박혔을 수도 있으니 엑스레이도 찍어보시고요. 압박 붕대만 감아드릴게요."


그렇게 진료비 8천을 내고, 또다시 피부과 밖으로 나왔다. 6시가 넘어 도로에 차는 가득했다. 택시를 타고 2차 병원 응급실로 갈까를 잠깐 생각하다, 남편에게 연락했다. 마침 집에 거의 도착했다는 말에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박스를 끌고 걸어가는 것처럼 발걸음이 너무 무거워 걸음이 안 걸어졌다. 이럴 때 의지할 남편이 곁에 있어 얼마나 다행이던지, 무거웠던 마음이 쪼금 가벼워졌다. 하나보다는 둘이 해결책을 찾는 게 도움이 될 거 같았다. 수원에 있는 2차 병원을 찾아 나섰다. 하필 의료대란일 때 이런 일이 생겨 빨리 처치를 할 수 있을지 꽉 막힌 도로를 보며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었다. 수원 병원응급실은 다행히도 한산했다. 대기 3번이라 20여분 기다리다 들어가 응급센터에서 의사를 만났다. 학생 같은 의사는 차분하게 아들의 상처를 살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느라 난 바빴고 다시 본 아들의 상처는 처음 볼 때보다 안 좋아 보였다.


"듀오덤은 왜 붙여줬을까?

 레이저도 했다고요?

 그냥 응급실로 오는 게 나아요."


날 불안하고 죄책감을 느끼게 만든 의사의 말들.


동네 병원에서 헛짓해서 아들을 더 힘들게 한 게 돼버렸다. 응급실은 상태가 얼마나 중해야 가는 곳인지 판단이 안 섰다, 우선 동네 피부과로 데려간 내 판단이 잘못이었어, 그리고 동네 피부가 의사도 원망스러웠다. 잘 모르겠으면 그냥 응급실 가라고 하던지. 왜 그런 처치를 했을까. 응급센터 의사가 다 맞는 건 아닐 수도 있지만, 왠지 모르게 피부과 의사에게 불똥이 튀며 못마땅했다.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 돼버렸다. 아프고 일이 발생하면 어떤 순서가 맞는지. 어떤 판단이 옳은지 매번 지나고 나서야 후회가 밀려온다. 


겉피부가 다 죽어서 봉합은 할 수 없고, 죽은 피부를 가위로 잘랐다. 새살이 돋기만을 기다리며 매일 소독을 하면서 감염을 피해야 한다고 했다. 동네 정형외과에서 매일 소독을 하라고. 약을 받아 들고, 응급실을 나서니 밤 9시가 다 되었다. 셋다 저녁도 못 먹고 멍하니 집으로 향했다. 


말없이 조수석에 앉은 나와 달리 남편은 아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몸집이 크니 넘어져도 남보다 크게 다친다는 것을 오늘 배웠지? 그래도, 얼마나 다행이니!  넘어져 머리가 다치거나 팔이 부러지거나 더 큰일이 생길 수도 있었지만, 무사히도 손바닥만 찢어졌잖아. 붕대를 감은 오른손을 며칠간은 못 쓸 거 같았다. 압력이 가해지면 상처가 붓고 피가 날까 봐 조심조심하라고 했다. 웃으며 시작한 하루가 힘들게 마무리되고 있었다. 본인도 많이 놀라고 힘들었는지 차라리 학원에서 공부하는 게 낫겠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학원 시험이 다음 주 월요일이라 숙제가 많을 텐데, 수업에도 못 가고 숙제도 못하고 당장 할 수 없는 일들이 눈앞에 보이니 잠시 서로가 답답했다. 중1 봄 체험학습을 잊지 않겠지. 건강하게 일상을 사는 일이 얼마나 큰 기적 같은 일인지, 때로는 다람쥐 챗바퀴도는 듯한 일상이 소중하다는 것을 아들은 오늘 크게 느꼈기를, 아무 생각 없이 흘려보내지 않기를 바랬다. 


제발, 조심히 살자꾸나. 몸은 커졌어도 아직은 초등학생 기운이 여전히 살아있는 아들아! 잘 회복할 수 있게 푹 쉬어라. 엄마도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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