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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May 22. 2024

희망하는 고등학교를 쓰라는 질문에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142

아들 친구 엄마들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글쎄, 학교에서 희망하는 고등학교를 쓰라는 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울 아들이 뭐라 썼는 줄 알아?"

일반고라고 썼대. 옆에 있는 애들은 과학고, 외대부고, 국제고 같은 특목고를 썼는데. 특목고 쓴 애들이 절반이나 된다던데?

" 우리 집 아들보단 나아요, 우리 집 아들은 oo고라고 썼다네요.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고등학교에 간다고."


그때 셋이 같이 웃어넘겼다. 우리 아들들은 그저 평범한 중학교 신입생이구나라고. 일반고를 가겠다는 게 지극히 평범하고 웃기는 세상이 되었다는 게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했다. 속으로는 어떤 큰 꿈을 꾸고 있는지 몰라도 나를 포함한 엄마들은 특목고에 대한 욕심이 없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들들이 아직은 특목고에 대한 어떤 관심도, 목표도 없이 하루하루 학교와 학원을 다니며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중학생으로 살고 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얼마 후 아들에게 지나가는 말로 이야기했더니 그제야 말을 했다. 


"우리도 조사했는데, 일반고 썼어요. 특목고는 자신 없어요."

"해보지도 않고, 그냥 포기하는 거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특목고를 원해서라기보다 아들이 목표 없이 그냥 정해진 공부만 꾸역꾸역 하는 게 싫어서였다. 안 가더라도 목표는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현실적인 아들은 비현실적인 목표는 안중에도 없다. 학년이 높아지면 혹시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에 어떤 강요도 기대도 하지 않고 지켜보고 있다. 본인의 생각이 중요하기에, 만약에 원한다면 지원해 줄 생각은 있는데 그런 때가 올까 싶다. 그 시간이 온다 해도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과연 로드맵을 가지고 준비를 해 온 친구들과 경쟁이 될까도 싶다.


그런데, 그런 질문을 중1 아이들에게 한 목적이 무엇이었을까? 지금 특목고를 희망한다고 쓴 들 그 아이들이 본인의 뜻으로 썼을까?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부모가 옆에서 특목고에 가야 하니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새뇌시켜 자기도 특목고에 간다고, 가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 건 아닐까? 


의대열풍에 합류하기 위해 요즘 아이들은 빠르면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늦어도 중학교 1학년부터 특목자사고 준비를 한다고 들었다. 수학에 재능이 있어 보이면 수학진도부터 빼면서 대형학원에서 만든 영재반에 앞 다퉈 들어가고 영재반에 다니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아들이 다니는 수학학원도 근방에서 유명한 대형학원으로 진도와 레벨을 촘촘하게 나눠서 블랙홀처럼 아이들을 빨아들이고 있을 정도다. 그곳에서 고등수학 진도를 나가는 애들이 영재반이나 혹은 영재반에 준하는 반에서 공부한다고 들었다. 수업시수가 일반반보다 많아서 학원비가 당연히 더 비싸다. 영재반 수업을 듣는 아이들은 과학선행도 같이 하기에 쉴 틈 없이 학원을 다닌다고 했다. 영어는 이미 초등학교 때 고등영어 수준까지 올려놓아서 수학과 과학에 신경 쓸 수 있을 정도라고 하니 그런 아이들의 촘촘한 시간표와 노력의 누적이 가히 놀라웠다. 나름 학군지인 우리 동네서 만족하지 못하면 엄마의 라이딩 실력을 불태워 분당과 대치동으로 학원을 다닌다. 특목자사고에 입학하기 위해.


https://m.science.ytn.co.kr/program/view.php?mcd=0082&key=202401161111462232




라테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아는 사람만 알지만 나도 외고 출신이다. 벌써 30년이 지난 이야기지만, 그땐 과학고, 외고, 예술고만 있었다. 외고 1호인 대원외고와 대일외고는 1984년에 설립, 1985년 부산외고, 1990년 한영, 과천외고, 1992년 명덕, 이화, 청주, 중산, 경남외고가 설립되면서 전국에 외고설립붐이 일었다고 한다. 초창기 외고는 진짜 영어를 좋아하고 잘하는 학생들이 우선 지원했지만 점차 문과성향의 학생들이 SKY대학을 목표로 진학하는 특목고가 되었다. 


중학교에서 공부를 잘했던 나는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이름도 낯선 외고라는 곳에 시험을 쳐서 그야말로 얼떨결에 합격했다. 중학교 때야 공부를 잘했지 막상 가서 보니 전국에서 모인 친구들은 1등을 안 해본 사람이 없었고, 50명 중 반 이상이 고등 수학과 영어를 이미 접하고 입학을 했다. 그 결과 1학년 첫 중간고사에서 처음 받아본 성적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시작부터 벌어져있던 격차는 고3 때까지도 상위권에는 들지 못하고 졸업하는 결과를 낳았다. 다들 눈에 불을 켜고 공부를 했기에 공부를 하면 현상유지, 안 하면 바로 자유낙하 수준이었다. 점심시간에도 쉬지 않고 공부를 하면서 요새말로 자기 주도적인 공부를 각자 알아서 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자존감이 있고 적당한 경쟁의식을 가지고 공부할 수 있다면 외고에 가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대신 외고 입학이 끝이 아니기에 웬만큼 준비를 하고 입학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 내 아픈 경험을 되돌아보니 그랬다. 준비 없이 들어가 힘들었던 시절, 그리고 SKY에 가지 못한 결과로 인해 외고를 선택한 그때의 결정을 되돌리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해 보면, 외고에서 공부했기에 우물 안 개구리에서 탈출할 수 있었고, 실패와 좌절을 경험한 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아들에게도 엄마의 과거 학창 시절 이야기를 해주곤 한다. 물론, 아들은 이과성향이라 외고는 선택지에서 일찌감치 제외되었지만 혹시라도 어떤 특목고를 선택하든 목표를 세우고 준비를 해서 발을 들여놓으라고. 그 안에서 또 다른 경쟁이 펼쳐지니 자존감을 지키며 공부를 하라고. 


지금처럼 특목고와 의대열풍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겠다. 남들이 간다니까, 그리고 안정적인 미래를 보장해 준다는 생각에 너무 많은 시간과 돈, 무엇보다 아이들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끌려다니며 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건 아닌지가 부모입장에서 걱정스럽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본인의 의지이다. 그 사실을 잊지 않고 내 아이들을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일반고든 특목고든 아이들이 제 발로 가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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