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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May 23. 2024

"기본에 충실한" 스콘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43

이메일을 쓰고 책을 읽으며 1시간 정도 앉아 있으니 온몸이 신호를 보냈다. 일어나서 움직일 시간이라고. 블라인드 틈새로 비치는 햇살은 오늘도 날씨 좋은 5월의 하루가 시작되었다고 나를 재촉했다. 여느 때처럼 동네 탄천길 산책을 할까 하다 집 근처를 벗어나 멀리 가보겠다고 집을 나섰다.


수원 행리단길을 갈 계획이었다. 카페와 맛집으로 유명하다길래 구경이나 해 볼까 하고 나섰다. 버스를 타고 수원화성의 동문인 창룡문을 지나 수원행궁 앞에서 하차했다. 가끔 차 없이 버스 타고 출퇴근할 때면 지나치던 행궁 앞 광장은 안 본 사이에 전보다 더 관광지스럽게 변해 있었다. 원래 계획했던 행리단길 대신 방향을 틀었다. 갑자기 회사 근처까지 걸어가 보고 싶어 마음이 내키는 대로 걸었다. 이럴 때 보면 나란 사람은 참 즉흥적이다. 어느덧 전업맘 6년 차로 접어들며 경보로 걸었던 길을 느릿느릿 걸었다. 


기분 좋게 산책을 마칠 때쯤 아담한 제빵소 간판을 보고 가게로 들어갔다. 이럴 때 참 좋다. 혼자 다니는 게 익숙하고 자연스러워졌다. 작은 동네 빵집, 카페는 오늘같이 혼자 나온 날에 피할 수 없는 참새 방앗간 같은 곳이다. 빵순이가 되어 들어갔다.


달보드레 유기농 제빵소


아담한 제빵소엔 빵을 굽고 응대하는 직원 외에 손님은 나 혼자였다. 30분 정도 쉬는 동안 빵을 사러 몇 사람이 들렀을 뿐, 조용했다. 마치 원두막에, 정자에 혹은 툇마루에 바람을 맞으며 앉아 있는 느낌이었다. 편안함이 좋았다. 처음 들어간 곳이지만 단골 카페인 듯 어떤 이끌림이 있었다. 유기농 밀로 만든 빵을 판매하는 곳이었고, 무엇보다 스콘이 눈에 띄었다. 주로 먹는 통밀빵 대신 오늘은 스콘을 집었다. 가끔 암 경험자임을 잊고 싶을 땐 집어드는 빵, 스콘이다. 스콘을 좋아하나 버터와 설탕이 많이 들어가 거의 피하던 차에 오늘 이곳의 스콘은 왠지 먹을 만할 것 같았다. "기본에 충실한" 스콘이라고 이름표를 달고 보통의 울퉁불퉁 동글동글한 스콘과 다른 모양새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래서 먹어봤다.



버터 풍미가 가득한 크로와상을 결 따라 찢어서 먹는 것처럼 한 장 한 장 붙여놓은 듯한 독특한 스콘이었다. 그리 느끼하지 않고 달지 않았다. 기본에 충실하고 성분에 자신이 있어서 속을 다 내보이는 듯했다. 쉬어가라고 유혹하듯 열어젖힌 큰 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기분 좋게 입에 넣었다.


"기본에 충실하자!"


머리를 식힐 겸 나왔던 산책길에서 만난 이 문구가 내 머릿속에 남았다. 

나는 기본에 충실하게 살고 있는가? 그렇다면 내 삶의 기본은 무엇일까? 복잡하고 화려한 세상 속에 오늘도 남과 비교하며 정신없이 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냥 스콘이 아닌, 기본에 충실하다고 설명이 추가된 스콘 하나 덕분에 갑자기 진지해졌다. 동시에 기본에 충실하기가 얼마나 어렵다고 생각했기에 이 문구에 사로잡혔을까? 웃긴 스콘이면서 진지한 스콘을 맛봤다. 기본에 충실한 외유내강한 사람으로 살고 싶은 소망이 은연중에 드러났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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