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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May 28. 2024

서울대 기념품점에서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45

17년 만의 재회


설레었다.

짧지만 긴 여운이 남는 시절을 함께 했던 친구가 지난 주말 타이완에서 날아왔다. 생글생글 웃는 얼굴에 검은색 단발머리의 사회학 전공 박사과정이었던 그녀와 기숙사 공용 키친에서 자주 마주치면서 금세 친해졌다. 

2살 위인 언니였고 하와이 생활 5년 차 선배로 딱히 관심사가 비슷한 것도 아니었지만, 비슷한 시간대에 밥을 먹다가 하루 세끼를 같이 먹는 식구 같은 관계로 발전했다. 키친은 우리 같은 외국인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사교활동의 중심지였다. 하루의 일과를 공유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언해 주는 카페 같은 곳이었다. 석사과정 2년 중 1년만 기숙사생활을 했지만, 그녀가 있어 기쁨은 배가 되고, 슬픔은 반으로 줄었다.


가끔씩 메신저로 안부를 전했던 그녀가 지난주 연락을 했다. 15살 난 딸을 데리고 둘이 여행을 온다고. 그리고 서울대입구역에서 만났다. 서로를 바로 알아본 우리는 믿기지 않는 재회에 연신 꿈같다고만 얘기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중년 여성들처럼 반가운 마음에 서로의 손을 부여잡았다. 단발머리는 그대로였지만 살이 붙은 엄마가 되어 10대 딸과 함께 서 있었다. 그녀의 외모를 많이 닮은 딸은 쇼핑하러, 그리고 친구는 나를 보러 한국에 왔다고 했다. 한국의 명문대학 기념품을 구입하는 것이 할 일 목록 중의 하나라기에 흔쾌히 서울대에 동행하기로 했다. 


친구 모녀 덕분에 나도 모처럼 서울대를 구경했다. 정확히 말하면, 서울대 기념품점을 구경했다. 대학생 때 하버드대, 뉴욕대, 콜럼비아대, 베이징대, 칭화대를 방문하며 잊지 않고 기념품을 샀던 나였지만, 생각해 보니 국내 대학을 방문해 기념품을 사본 적은 없었다. 모교의 기념품도, 친구가 다니는 학교의 기념품도 사본 적이 없어 이번 방문이 어쩐지 어색했다. 이젠 학부모 입장에서 기념품점에 들르니 또 다른 모습이 눈에 띄었다. 처음 친구가 서울대 기념품점에 들른다고 했을 때 약간 의아해하며 쇼핑하러 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었다. 막상 들어가 보니 내 예상이 완전히 깨졌다. 그리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매장 안은 어느 노래가사처럼 없는 건 없고, 있을 건 다 있어 보였다. 종류가 다양했다. 노트, 펜, 필통, 자, 형광펜과 같은 문구류에서부터 가방, 양말, 모자, 학교점퍼, 키링은 물론이고 칫솔, 치약과 같은 구강용품과 건강식품까지. 





처음 발을 들였을 때 직원 3명이 무료하게 우리를 쳐다보았다. 그것도 잠시 학생과 부모가 계속 들어와 이것저것 물건을 들었다 집었다 하며 쇼핑 삼매경에 빠졌다.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중학생으로 보이는 학생까지 나이도 다양해 보였다. 샵 안은 금세 붐볐다. 단순히 기념품을 사겠다고 들른 친구와 딸과 달리 내 눈에 보이는 사람들은 진지해 보였다. 서울대라고 쓰인 글자를 보고 그 기운과 힘을 받아 전진하겠노라고 선언하는 듯 보였다. 


친구의 쇼핑을 옆에서 몇 마디 거들면서 다양한 물건에 감탄하며 서로 장난도 쳤다. 


"서울대 기념품을 사면 똑똑해진다!"

Buying souvenirs makes you smart!


친구의 말처럼, 똑똑해지는 마법이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서울대생이 될 것이다."라고 자기 암시를 하면서 공부를 열심히 하면 진짜 서울대생이 될 수 있을 가능성이 아무런 목표 없이 공부하는 학생보다는 높을 것이다. 떡잎이 보이는 자식을 데리고 쉬고 싶은 주말 오전에 서울대를 방문할 때는 다 그만한 꿈과 목표가 있을 테니까. 기념품으로 바구니를 채운 친구의 딸은 만족스럽게 기념품점 앞에서 기념촬영까지 마쳤다. 나도 잊지 않고, 서울대 기념품점을 방문한 기념으로 "서울대학교"라고 쓰인 펜 하나를 샀다. 나를 위해. 아직은 아이들에게 내 마음대로 기념품을 사 주고 싶지 않다. 관심 없는 물건은 쓰레기만 될 것이기에, 기회가 되어, 서울대 투어를 해 보고 싶다면 그때 데리고 오면 되니까. 반가운 친구도 만나고, 덤으로 엄마가 되고 나서야 서울대 기념품점 구경까지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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