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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May 30. 2024

경단녀들의 수다에 없는 것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47

어쩌다 보니 1년에 한 번씩 만나는 모임이 되었다. 

고등학교 동창 세 명이 평일 오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아줌마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마침 지난주 단톡방에서 잘 나가는 친구의 근황이 소개되고 난 터라 자연스럽게 그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며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고등학교 때는 크게 눈에 띄지 않았는데, 네이버에 검색하면 등장할 정도로 엄청 성공한 커리어우먼이 되었다. 직장인도 부러워할 만한 위치인데 경단녀인 우리 셋은 말할 것도 없었다. 자연스럽게. 


"대단하다, 부럽다! 어떻게 그 자리까지 올랐을까?"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친구의 성공 앞에서 잠깐 넋 놓고 부러워했다. 그뿐이었다. 어떤 피나는 노력 끝에 얻은 결과인지는 몰라도 진짜 열심히 살았을 것 같았다. 40대 후반이 되니 임원급 커리어우먼과 주부의 일상이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성질을 띠는 듯하다. 외고 동창생인 우리들은 현재 경단녀의 일상을 살고 있다. 


A는 전직 회계사, B는 삼성전자 퇴사, 그리고 나. 10여 년 정도 각자의 분야에서 사회생활을 했으나 과거는 과거일 뿐, 현재는 아이들을 키우고 집안을 돌보며 산다. 옷차림을 봐도, 끼리끼리 모인다고 어찌나 수수한지. 그저 웃음이 나왔다. 청바지, 면바지에 체크무늬 난방을 하나씩 걸치고, 심지어 B는 손가방도 없이 나타났다. 남편들의 사회적 지위도 있고, 강남에 살지만, 명품백도 귀걸이 같은 장신구도 없이 나타난다. 겉치레에 신경 쓰지 않고 만날 수 있는 친구들이라 눈치 보지 않고 일상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주제는 이것저것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무려 4시간 동안 이야기가 쉼 없이 이어졌다. 보통 그렇듯, 부모입장에서 아이들의 공부이야기, 자식입장에서 연로하신 부모님과 시부모님의 건강 이야기로 이어졌다. 기대만큼 공부를 하지 않는 자식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고, 투병 중인 시부모님을 보는 며느리의 입장에서 느끼는 걱정과 스트레스도 빠지지 않는 주제였다. 부모님 이야기를 하다가 작년에 돌아가셨다는 아버지 이야기를 하며 울먹이는 B의 이야기를 한참 동안 들어주었다. 친구들에게 연락도 하지 않고 아버지를 보냈던 가슴속에 맺혔던 응어리진 이야기를 한참 이어갔다. 오래된 친구이니 앞에 앉아 들어주는 별거 아닌 행동만으로도 위로가 되었으면 싶었다. 


자식이야기와 부모님 이야기는 했지만 정작 본인 이야기는 서로 하지 않았다. 엄마로서 자식으로 살면서 내가 없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소위 말하는 좋은 대학을 나왔어도 경단녀의 삶을 살게 되자 "나"는 사라진 지 오래인 듯싶었다.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다. 


'너희들은 어때? 엄마나 딸로서, 며느리로서의 생활 말고는 없어?'


현재의 위치에서 현재의 역할에 충실하다는 증거겠지만 한편으로는 능력자들이 집안에만 머무르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 아쉬움은 슬쩍 지나가는 말로 한 마디씩 했다.


"우리 같이 할 만한 일이 없을까? 

 재취업은 어려워. 허드렛일 말고는 없는 것 같네."


그게 다였다. 다음에 만날 때는 "나"에 대한 소식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싶다는 마음만 갖고 하교할 아이들이 있는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각자의 길, 각자의 집, 각자의 인생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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