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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May 31. 2024

남편이 하는 잔소리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48

강한 햇살에 여름이 코 앞으로 다가왔음을 느끼는 요즘이다. 산책을 다녀와 운동화를 벗는 순간 코 끝에 퍼지는 발냄새를 1분 1초라도 빨리 없애기 위해 발을 씻고 나니 금세 시원해졌다. 오늘은 꼭 해야지. 더 이상 미루지 말자고 안방 옷장문을 열어젖혔다. 


며칠 전 남편에게 말했다. 

"여름 양말 꺼내놔야겠다. 발이 덥겠는데"

"응. 그래도 생각은 하고 있나 보네. "


그랬다. 사실 생각은 진작 했다. 실행이 늦어졌을 뿐이다. 주부경력 10년이 넘었어도 여전히 부족한 내게 잔소리를 거의 하지 않는 남편인데, 덥기는 더웠나 싶었다. 철이 바뀔 때마다 옷장 정리를 하는 고수가 아니라 필요할 때가 돼서야 옷장 정리를 시작한다. 말을 했으면 하루라도 빨리 여름양말을 신고 출근했을 텐데. 해 줄 때까지 무작정 기다릴 생각이었을까. 인내심에 한계가 오면 이야기했겠지. 여름 양말을 꺼내 세탁하고 가지런히 정리했다. 


생각해 보니 결혼 후 지금껏 살면서 내게 크게 바라는 게 없었다. 살림을 잘하라고, 생활비를 아껴 쓰라고, 재테크를 하라는 등의 말을 듣기 싫게 한 적이 없다. 결혼 전, 서로 큰 기대를 하지 말자고 했던 말이 속상했던 때도 있었다. 살다 보니 이제는 안다. 그 말만큼 나를 편하게 하는 말도 없다는 것을. 그래서 한편으로는 고맙고 미안했다. 5년 전부터는 아픈 나와 살아서 더욱 미안하다. 건강하지 못한 사람과 산다는 건 항상 온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기 때문이다.


요새 부쩍 듣기 좋은 잔소리를 한다. 

"일찍 자. 잠이 부족하면 면역이 떨어져 아프니 틈날 때마다 자. 잠이 부족하지 않게 해."


내 건강을 챙겨주는 그 마음이 고맙다.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내 몸은 혼자만의 몸이 아니니 잘 관리해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나도 그리고 남편도. 


지인의 지인이 재테크를 잘 한 덕분에 남편을 조기퇴직시킬 수 있게 되었다고 자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무자식인 그녀는 남편이 회사에 매여 사는 게 안쓰러워 해방시켜 줄 재테크 계획을 세웠고 마침내 실현을 목전에 두었다는 이야기에 우리 남편이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똑소리 나는 부인이 아니라서, 건강한 부인이 아니라서, 퇴직 이후에도 일을 해 보겠다고 자격증 공부를 하는 남편에게 미안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차근차근해 가며 남편옆에서 오래 살기로 했다. 아이들의 엄마와 남편의 아내로서 내 자리를 지키면 된다. 프로답게 옷장을 정리하고, 먹을 것을 준비하고, 집안 정리를 하는 일은 부차적인 것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내 건강을 챙기면서 그들 곁에서 건강하게 살아가면 된다. 남편이 말했듯이, 재테크는 본인이 하니 난 건강만 챙기면 된다. 그리고 추가로 건강이 허락하는 한에서 내 인생을 가족만큼이나 아낌없이 사랑하면 된다. 

5월 가정의 달을 보내며 남편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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