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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Jun 18. 2024

우리 나이에는 영양제를 먹어야 해!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61

"택배 도착하면 연락해."


동생이 보낸 카톡이 왔다. 필요 없다고 그리 말했건만. 몇 시간 뒤 영양제 3통을 담은 박스가 도착했다.

비타민, 칼슘, 유산균 삼총사.





"제발 영양제 좀 챙겨 먹어. 골골대지 말고. 우리 나이에는 영양제가 필수야!  내 친구한테 물어봐서 사줄까?"

"내가 알아서 할게."


동생과 전화통화를 하다가 또 영양제 이야기가 나왔다. 영양제를 먹어야 한다는 동생과 굳이 안 먹어도 된다는 나는 매번 실랑이를 벌인다. 똑같은 레퍼토리로 이야기는 끝이 났지만, 이번에는 동생이 직접 사서 보냈다. 사실 처음이었다. 다음 달에 이사 간다고 돈 들어갈 데가 한 두 군데가 아니라고 투덜대던 동생이 돈을 썼다. 그동안 별다른 내색을 안 하던 동생이 내 건강을 이렇게까지 염려해 준다는 마음이 쨍하게 울려 고마웠다. 감동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엄마한테 좀 더 신경 써주지. 엄마 용돈이나 한번 더 주지.'

겉으로는 표현하지 못했지만 지난 생신에 용돈도 안 드리고 간 동생에 대한 앙금이 여전히 남아 있는데 갑자기 나를 챙기는 그녀의 마음이 부담스럽기까지 했다.  


'아니야, 아니야. 엄마는 엄마고, 나는 나니. 나를 위해 보냈으니 잊지 말고 잘 챙겨서 먹자'로 감사하게, 기쁜 마음으로 받았다. 아침마다 동생을 생각하며, 내 건강을 생각하며 먹기 시작했다. 동생의 마음이 스며든 플라세보 효과라도 있기를 바라면서. 




"우리 나이"라고는 하지만 생애 모든 시기에 필수적인 영양제가 있다는 광고는 우리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어린이용, 청소년용, 성인용, 노인용. 다 챙겨 먹기도 버거울 정도로 보인다. 광고나 주위 사람들을 보면 이것저것 챙겨 먹는 게 많아도 너무 많다. 채워지면 좋으련만. 손쉽게 영양제만 챙겨 먹고 음식조절과 운동은 멀리하고 있는 건 아닌지 가끔 물어보고 싶을 때가 있다. 


"난 이거 먹는데 넌 안 먹니? 이게 참 좋더라! 영양제라도 먹어야지!" 

나이 들수록 약인지 영양제인지 헷갈릴 정도로 선반에 약통이 가득하다. 시댁에 가서 봐도 그렇다. 제약회사에 다니는 딸 덕분에 어머니는 원하는 영양제를 마음껏 드시는 것 같다. 10여 가지의 약통을 쳐다보면서 중복되는 성분이 여러 개 있을 것 같아 여쭤보면 그냥 좋다고 하니까 먹는다고 말씀하신다. 영양제도 개인의 선택 영역에 든 이상 먹고 안 먹고는 개인이 결정할 문제이다. 의사나 약사같이 이 분야 전문가들조차도 식품으로 채울 수 없다고 꼼꼼하게 챙겨 먹는 부류와 웬만하면 안 먹는다는 부류로 나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영양보충제로 먹는 영양제를, 꼭 필요한 경우에만 챙겨 먹고 있다. 5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식후에 먹는 영양제는 암과의 동행 이후 병원에서 처방받은 비타민D와 칼슘이 전부다. 매일 항호르몬제와 함께 섭취한다. 종양내과와 안과 담당의사가 굳이 영양제로 보충할 정도의 건강상태가 아니라고 하는 말을 철석같이 믿고 추가적으로는 애써서 복용하지 않는다. 듣고 싶은 대로 들으며, 권하지 않는 전문가의 말을 잘 들으며, 대신 잘 먹고 잘 자고 스트레스를 줄여 살고자 노력하고 있다. 40대 초반에 암을 만난 덕분인지 내 몸 상태를 알고 꼭 필요하다는 것만 알아서 채우게 되었다. 스스로 필요하다고 느끼는 순간 나도 영양제 쇼핑에 동참하게 되겠지만 아직은 영양제의 힘에 기대어 살고 싶지 않다. 식재료를 다듬고 차려내는 게 번거롭지만 내 손으로 만지고 내 입으로 맛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시간과 체력이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기에 영양제는 약간 뒷전으로 밀어놓는다. 미니 단호박과 방울토마토를 간식으로 챙겨 먹는다. 자극적이지 않고 본연의 맛을 천천히 음미하는 즐거움은 캡슐로 만들어져 단숨에 목으로 넘어가는 영양제에 비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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