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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Jun 16. 2024

아들 따라 시리얼 먹는 아빠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60

밤 10시가 넘어 자기 방에서 나온 아들 소리에 남편도 덩달아 방에서 나왔다. 저녁 먹은 지 3시간이 지나 출출하다며 시리얼을 꺼내 들고 식탁에 앉는 아들을 본 남편, 따라먹기 시작했다. 아들을 마주 보고서.


"갑자기 시리얼은 왜 먹어?"라고 묻자, 

"그냥, 아들이 먹으니 나도 먹어보려고."


후다닥 시리얼을 마셔버린 것처럼 순식간에 먹어치운 아들은 할 일을 마쳤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에 잠시 서 있었다. 인터넷 기사를 보던 나는 둘의 모습을 지켜보다 참지 못하고 말해버렸다.


"아빠가 너랑 같이 있고 싶어서 시리얼을 먹는데 좀 앉아라도 있어라."


별 반응 없이 아들은 방으로 들어갔고, 멋쩍은 남편은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아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차차 말수가 적어지더니 중학교 문에 들어서자 가뭄에 콩 나듯 말을 한다. 서로가 할 말이 그렇게나 없나 싶을 정도다. 기다렸다는 듯 아들은 딴 사람으로 변신했다. 주말에 4명이 같이 집에 있어도 조용한 가족이 따로 없다. 시끌벅적 거실에서 주로 생활하던 아이들은 이제 각자 방에서 잘 나오지 않는다. 그나마 딸은 아직까지는 거실에서 게임도 하고, 유튜브도 보지만 중학생이 된 아들은 얼굴 구경하기 힘든 연예인을 모시고 사는 느낌마저 든다. 식당에서 혼밥 먹듯 조용히 밥 먹고 조용히 일어난다. 스스럼없이 장난치듯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아들 입장에서 부모에게 딱히 할 말이 없을 것도 같다. 매일 보는 사이라 그저 공기같이 느껴지는 게 아닐까? 신상에 큰 문제가 없기도 하고, 딸처럼 일상생활을 공유하는 성격도 아니다. 슬슬 자기만의 세상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으니 그 세상에 집중하느라 주변이 안 보이는 건 자연스러운 건가? 부모가 듣고 싶어 하는 공부 이야기에는 자신이 없고 틈새 조언이라도 터질까 봐 그냥 대화자체를 피하는 건 아닐까? 공통의 관심사나 취미라도 있으면 대화를 술술 이어갈 수 있는데 지금 당장은 어떤 것도 없다. 한때 주말마다 "태종 이방원"이나 "고려거란전쟁"을 함께 보며 등장인물이나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나가던 끈도 끊어졌다. 하루 중 기분 좋을 때, 지나가는 말로 역사 속 인물의 숨겨진 이야기까지 꺼내 설명해 주는 게 전부다. 


잔소리는 누구나 듣기 싫다. 부모라는 이유로 계속 잔소리를 할 특권은 없기에 최소한의 잔소리만 마음에 장착한 채 아들을 지켜보고 있다. 공부와 생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한두 마디 꺼내볼까 하고 눈치를 살피고 이야기를 꺼낸다. 그마저도 간단명료하게. 크게 소리치거나 호통치지도 않고 그저 말없이 지켜보는 중이다. 아들의 등짝을 떄려본적도, 아들에게 소리 질러 본 적도 없다. 내가 그렇게 자라지 않아서, 성격상 체력상 배출하지 못한다. 그저 속으로 참고, 말 한마디 던졌다가 반응 없음에 서운해하는 소심한 사람이다. 


부모는 곁에서 하나라도 챙겨주고 싶은 마음을 끝까지 가지고 가는 특별한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아니 그저 옆에 앉아 있기라도 바라는 것 같다. 자식 된 입장에서 내 부모와 시부모와 함께 앉아 불꽃 튀기며 즐겁게 할 이야기는 많지 않다. 80퍼센트 이상이 그저 옆에 앉아 들어드리는 일이다. 그렇게라도 앉아 있음을, 곁에서 말을 들어주고 있음에 뿌듯해하는 부모님을 바라볼 뿐이다. 


재잘대던 아들이 어느새 자라 말없는 청년이 된 게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사춘기라는 아들의 인생 터널을 통과하면 어떤 모습으로 성장해 있을까? 


부모는 자식옆에 오래 있고 싶어 하는데, 자식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멀어져만 간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따뜻하게 지켜보는 부모에게 걸맞은 옷을 입을 때가 왔다. 하루하루 그렇게 자식이 성장하는 만큼 부모도 성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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