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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Jun 14. 2024

내겐 너무 먼 프로 주부의 길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59

쓰던 물통이 깨진 것 같다는 엄마의 전화에 아침부터 집을 나섰다. 출장 간 남편 덕에 주차장에 대기 중인 차가 있어 안 그래도 엄마 얼굴이나 보고 올까 생각 중이었는데, 병원에 가야 할 목적이 분명해졌다. 엄마가 계시는 요양병원 근처 이마트로 향했다. 영업시간이 시작된 지 1시간도 안 되었는데 지하 1층부터 만차였다. 한 층 더 내려가고, 또 내려가 지하 3층에서 2바퀴 정도 돌다 한 자리가 보이자 얼른 주차를 했다. 아침부터 무슨 일인가 싶었다. 평일 오전에 이 동네 이마트가 이렇게 인기였단 말인가? 


제일 중요한 물통을 고른 뒤에 식품 매장에 들어선 순간. 

주차장이 만차인 이유가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경험하는 "발 디딜 틈 없는" 매장 안에서 다들 눈에 불을 켜고 수북이 쌓인 오이더미 속에서 오이를 담고 있었다. 직원은 금세 바닥이 드러나는 오이를 리필하느라 땀을 흘리고 있었다. 


오이 10개 1,480원


그럴 만했다. 한 개에 148원꼴이니. 진짜 쌌다. 이런 가격을 본 적이 없었다. 평소에 싸봤자 한 봉지 5개 들이 3천 원 정도 했던 거 같은데. 잠시 넋 놓고 봤다. 여길 가도 치이고, 저길 가도 치였다. 옥수수, 수박, 바나나, 키위... 평소보다 저렴해 보였다. 엄마 장을 먼저 보고 다시 와서 장을 보겠다고 생각하고는 돌아섰다. 참외 2 봉지와 사과 1 봉지를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계산대를 향한 줄도 역시 길었다. 오이를 가득 담은 카트 뒤에선 주부들의 얼굴에는 '난 싸게 샀다'라는 뿌듯함이 묻어 있었다. 


입구에 놓인 전단지를 보고 알았다. 그리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았다. 


https://www.mk.co.kr/news/business/11039748


엄마를 만난 후 다시 이마트로 돌아왔다. 1시간 전보다는 매장이 한산해졌다. 그 이유 또한 눈으로 확인했다. 오이도, 옥수수도 다 팔렸다. 줄 서서 1인당 1팩만 구입할 수 있던 삼겹살과 목살 앞에는 긴 줄 없이 바닥을 드러낸 고기가 남아있었다. 삼겹살 한 팩을 집어 들었다. 


삼겹살 한팩 5,295원


옆에서는 삼겹살 리필 대신 5,900원에 양념 소불고기 홍보가 한창이었다. 생각보단 반응이 별로인듯했다. 


조금이라도 생활비를 줄여보겠다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고물가 시대를 사는 주부들을 보았다. 전단지를 살펴보고 오픈런을 한 주부들의 빠른 움직임을 보았다. 여기저기 고물가시대의 생존법과 절약법이 공유되는 가운데 내 생활을 되돌아봤다. 절약하겠다는 말은 쉽게 하지만 엄밀히 말해 적극적 실천을 안 하고 있다는 부끄러운 반성을 했다. 가성비 좋은 대용량 식품이나 저가 제품을 선호하지 않고, 싸다고 소문난 식자재 마트에 가서 장을 보지 않았다. 각자 입장에 따라 사는 방식이 있긴 하나 그저 과일의 가짓수를 줄이고, 간식을 줄인 것 말고는 없었다. 주부지만, 프로주부의 세계만 엿보고 있는 관찰자적 입장에 있는 것 같았다. 


고물가 시대, 더운 여름날 밥상을 차려내는 주부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과 수고에 감사하는 시간을 한 번쯤 가져보면 좋겠다. 밖에서 돈을 벌어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식비 절약을 위해 주부들도 애쓰고 있다는 것을. 내 생활은 반성하고, 프로 주부님들의 노고를 높이 사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 엄마들이 그랬듯이, 오늘의 엄마들도 여전히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안 먹고는 못 살기에 어떻게 해서든 아끼고 줄이기 위해 여기저기서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보통의 서민들은 그렇게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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