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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Jun 23. 2024

며느리의 착각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65

우리는 밥심으로 산다. 그만큼 밥에 대해 할 말이 많다. 엄마의 사랑이 담긴 밥상, 추억의 밥상, 고마운 밥상은 주로 받아먹는 사람의 입장에서 하는 말이다. 당연하게 여겼던 집밥의 수고로움과 엄마밥 뒤에 숨겨졌던 고됨을 이제야 터놓고 이야기하며 차리는 사람의 입장을 전보다 자주 듣게 되었다.


어미새의 먹이를 받아먹던 철없는 딸에서 어미새가 되어 보니 알겠더라. 먹이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아 부담감이 커졌다. 맛있는 음식을 해 주고 싶어 설레며 밥을 준비할 때도 있지만 어김없이 돌아오는 끼니마다 반복되는 메뉴를 피해 도망치고 싶을 때도 있다. 뱃속만 채우는 게 아니라 식구들을 먹여야 해서 버거운 거다. 


30년 넘게 솥뚜껑 운전을 했던 엄마의 고충을 이제는 안다. 리고 누구보다 잘 먹여 키워냈지만 한편에 고스란히 남겨진 헛헛함도 보았다.


시댁에서 밥을 먹으면 좋았다. 신혼 때는 시댁밥이 불편했지만 점차 바뀌었다. 엄마가 병원에 계시면서 친정이 없어지자 시어머니밥이라도 먹을 수 있어 좋았다. 아이들이 어리고 끝없이 챙겨야 하는 친정일에 직장일에 지쳐 누군가 따뜻하게 해주는 집밥이 한없이 그립던 시기가 있었다. 한 해 두 해 지금까지도, 준비하신 반찬과 밥에 붙는 꼬리표 같은 "먹을 게 없다"는 말씀에도 옆에 서서 항상 말씀드렸다.


"차려주신 것으로도 충분해요.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난 진심이었다. 어느 때부터인지 70세가 넘은 분한테 얻어먹는 게 부담스럽게, 죄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힘에 부친다고. 매 해 기운이 다르다고 말씀하셨지만 내 입장에서만 들었다. 자식이고 일 년에 몇 번안되니 괜찮은지 알았다. 가끔 가서 받아먹는 자식으로서.


그동안 꽤나 힘드셨나라는 진지한 깨달음에 도달하기까지, 지난주 내내 마음속이 콩 볶듯 시끄러웠다. 올해 생신을 앞두고 전화 통화 때마다 잊지 않고 하신 말씀이 있다.


"내 생일에는 오지 마라."

"그래도 생신인데 안 가면 어떡해요. 얼굴 한 번 더 보고 밥 먹는 건데요."

"내 생일 말고 한 달 뒤 아버지생신 때 집 근처 식당 가서 밥 먹자."


속으론 '그래도 가야지. 가서 인사드리고 와야지.'라고 남편과 계획을 세워놨다.


그런 생각 중에 놀러 온 시누이와 대화 중에 내가 먼저 생신이야기를 꺼냈다.


"어머니 생신에 오지 말는데도 가려고요. 안 가면 서운하고 오빠가 울산 내려가면 자주 보기 힘드니 있을 때라도 자주 가는 게 좋을 거 같아서요."

"언니. 오지 말라 하니 가지 마요. 대신 내가 갈 테니 언니오빠는 아빠 생신 때나 가세요."

"오빠, 자주 갈 생각 말고 전화를 자주 하면 돼."


그러면서 어머니가 밥을 차려내시느라 힘들다는 얘기를 꺼냈다. 안 그래도 요리를 못하는데 사위와 며느리가 온다고 하면 걱정부터 하신다고. 특히 명절을 앞두고는 지나치다 싶게 신경을 쓰시는 분이라 딸인 자신이 메뉴를 정하고 장보기까지 다 살펴준다는 말을 했다. 아가씨가 어머니 속마을 100프로 대변하지는 않을지라도 누구보다 가까운 딸에게 한말이니 그냥 쉽게 넘길 수도 없었다. 젊어서부터 신경이 예민해 신경정신과 약을 드시는 분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미처 몰랐다. 더군다나 새색시도 아니고 결혼한 지 15년 된 며느리도 아직까지 온다는 연락을 받으면 밥걱정부터 하신다는 말에 할 말을 잃었다. 공짜 밥을 얻어먹으러 가는 사람이 된 것 같아 불편했다. 밥이 목적이 아니었다고 소리쳐 말해도 소용없었다. 결국 사위처럼 나도 어려운 존재였다. 위와 며느리는 손님이었다. 아가씨가 간 뒤 남편게 속상함과 야속함을 터놓았다.


"어머니가 보통 사람은 아니지. 나중에 시어머니가 되면 넌 어떨지 생각해 봐."


이 두 말을 숙제로 남겼다.


나 혼자 시간이 흘러 익숙하고 편안해진 거였다. 친절하게 챙겨줬더 혼자 착각하며 온전히 받아들여졌다고 꿈꾼 것처럼? 어쩌면 어머니는 항상 제자리에 서 계셨을지 모른다. 시어머니의 자리에. 나도 처음에는 며느리의 자리에 서 있었지만 시간과 같이 혼자서만 앞서 걸었던 건 아닐까? 옆에 계시길 기대한 건 아닐까?


며느리로 살 날보다 며느리를 보고 살아갈 날이 더 길 텐데, 난 어떤 시어머니로 살아가야 할지 벌써부터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라는 거리는 어느 정도가 최적의 거리일지 가늠하기가 여전히 어렵다. 나 정도는 괜찮은 수더분한 며느리인 줄 알았는데 그건 나만의 착각. 속속들이 알 수 없으니 더 어렵다. 편의 가족도 내 가족이라고 은연중에 기대하며 씨앗을 품었었나 본데 유리천장 같은 벽이 굳게 버티고 있었다. 그 생각에 더 이상 나아가는 게 무의미하다고 느껴졌다. 그냥 있는 대로 받아들이면 되는데, 원래 시댁은 그런 건데, 왜 나만 다를 거라 꿈꾸고 있었는지 한심하기도 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프레임을 벗어나 나약한 인간으로 보려고 노력해 보면 좀 나을까? 나이 들어 아프고 힘이 들어 밥 하기가 부담스러운 상황으로 이해해 볼까? 시누이한테 들은 이야기를 지우려 해도 완전히 지워지지는 않겠지만 몸이 안 따라줘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하면 내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할까? 나도 늙어가는 엄마니까 역지사지 정신으로 이해한다면 시댁 프레임보다는 낫다고 의식적으로 마음먹고 받아들였다. 이랬다 저랬다 복잡하고 무겁지만 조금씩 서서히 마음이 가벼워지고 있다. 아직은 진행 중이다. 인간관계는 어렵고도 어렵다. 내 마음과 같을 거라는 착각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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