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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Jun 24. 2024

아들이 울산이 좋았다고 했다.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66

"울산에서 살다 온 게 좋은 거 같아요."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을 했어?"

"사회시간에 울산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저만 태화강을 알고, 석유화학단지에 대해 알고 있었어요."

"할 말이 있어서 좋았어?"

"네, 지나고 보니 여기서만 살았다면 친구들과 경험도 비슷비슷하고 색다른 게 없었을 거 같아요. 

 다른 도시에서 살아본 애들이 거의 없더라고요."


어제 가족들과 으쌰으쌰 여름을 잘 보내자는 뜻을 모아 집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좋아하는 치킨을 먹던 아들이 갑자기 울산 이야기를 꺼냈다. "시간이 빨리 흘러 용인 우리 집으로 가고 싶다"를 입에 달고 살았던, 누구보다 울산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아들이었다. 울산에서 살았던 우리의 시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말이 처음으로 나왔다. 남들은 모르는 것을 혼자만 알고 있다는 사실에 뿌듯했는지 경험의 가치를 알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괜히 내 기분도 덩달아 좋아졌다. 


우리 가족에게 울산은 제2의 고향이 되었다. 울산에 관한 뉴스에 귀를 기울이고, 추우면 추운 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태풍이 오면 태풍이 오는 대로, 자연스럽게 울산을 떠올린다. 남편이 퇴직할 때까지 울산은 계속 우리의 레이더망에서 벗어날 수 없 친근한 도시가 되었다.


아이들 입장에서 어떤 점이 좋았을까 잠시 핸드폰 속 갤러리를 둘러보았다. 이사한 당일부터 자전거를 끌고 나가 타기 시작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7살과 9살, 아이들이 한창 놀이터에서 뛰어놀고 킥보드와 자전거 타는 즐거움에 빠질 딱 그 나이에 울산에 살았다. 지금 사는 아파트는 신축이지만 자동차가 지상으로 다녀 놀기에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운전자 또한 저속으로 아이들을 사방으로 살피며 엉금엉금 다녀야 한다. 울산은 달랐다. 10년 넘은 아파트였지만 집안팎이 쾌적하게 넓었다. 아이들이 다칠까 놀이터에 앉아 집에 갈 때까지 기다리는 일은 없었다. 택배차가 들어오긴 했어도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을 만큼 넓고 평지인 아파트 단지는 꿈의 아파트였다. 어느 공원 못지않게 4계절 내내 멀리 가지 않아도 휴식과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었다. 마음껏 뛰어놀았다는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줬다.


울산 아파트 단지


사회시간에 교과서에 삽입된 사진으로만 배울 수 있는 공업도시 울산을 직접 눈으로 보는 기회를 가졌다. 관광지에 가서 실물을 보고 감탄하듯 울산의 실체를 대강이라도 볼 수 있었다. 멀리서 석유화학단지가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차 안에서도 석유냄새를 맡을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현대중공업 또한 아쉽게도 견학은 못해봤지만 아는 것 없는 일반인으로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울산 석유화학단지와 현대중공업


울산에 살아서 1시간 거리인 부산과 경주에 자주 갈 수 있었다. 울산 북쪽으로는 포항과 영덕, 남쪽으로는 통영, 여수, 순천을 구경할 수 있었다. 경기도에 계속 살았다면 쉽게 떠나지 못했을 남쪽 여행을 다녀올 수 있어 행복했다. 


꼭 울산이 아니었어도 태어나고 자란 도시에서 벗어나 다른 지역에서 살아보는 것은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남편하고 가끔 이야기한다. 아이들이 어리고 생업에 선택권이 있다면 몇 년씩 장기여행을 하듯 타 지역에서 살아보는 것도 생각과 경험을 풍부하는데 좋을 것 같다고. 충청도, 강원도, 전라도에서 살아보지 못해 뒤늦게 아쉽다. 나이 들어 제일 필요한 의료시설만 제대로 갖춰져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살아볼 만하다는 용기를 얻었다. 제주도 한 달 살기의 붐은 약간은 시들해진 듯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낯선 곳에서의 생활을 꿈꾼다. 국내외 한 달 살기가 여전히 인기인 것을 봐도 그렇다. 휴식과 재충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싶기에 오늘도 어디선가 분명 한 달 살기가 계획중일 것 같다. 


울산 덕분이다. 아들에게 도움이 되어 좋은 경험으로 이야기할 수 있게 돼서 다행이다. 남들보다 조금 다른 경험을 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자산이 되는지 앞으로도 살면서 계속 느끼게 될 것이다.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경험이 있고, 스스로 찾아서 할 수 있는 경험이 있다. 주저하지 말고, 색다른 경험을 하면서 지루하지 않게 즐거운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 아들에게도 나에게도 해 주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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