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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Jun 25. 2024

가볍게 살기, 어렵지만 노력 중이다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67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주니 햇볕이 강해도 걸어 다닐 만했다. 나무 그늘에 서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 맛도 좋았다. 창문을 열어놔도 어딘지 답답한 집안보다는 역시 사방이 트인 집 밖에서 숨을 쉬는 게 참 좋다. 

공기의 흐름이 느껴졌다. 내 속까지 흘러들어와 나를 가볍게 해 주었다. 


애초에 난 무거운 사람으로 태어났다.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태어날 때 몸무게가 4kg 정도였다. 말이 늦게 트였다. 세 살 때 엄마가 동생을 낳으러 가면서 옆집에 맡겨놨는데 "물"이라는 고작 한 단어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해 "우쁘 우쁘"만 하다 물 한잔 못 얻어먹고 한없이 엄마를 기다렸다.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학생으로 자라면서 두통약을 달고 살았다. 도전은커녕 소심하게 피하는 방식을 선호하면서도 학교나 사회의 정해진 규칙은 누구보다 철저하게 지키며 살았다. 강박으로 가득 차 여유 없이 빠듯하게 살았다. 겉으로 보기에 당연히 무겁고 재미없는 사람이었다. 주변에는 나와 비슷한 느낌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하이톤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대부분 모노톤인 사람들은 드라마틱한 언변은 없지만 성실하고 진지했다. 


젊은 시절, 단순하고 재미있는 사람을 보며 부럽기도 했지만 나와 결이 다른 가벼운 사람이라고 지레 판단하며 함께 있는 것을 불편해했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었음에도 당시에는 본 것만 믿었다. 그들의 능력을 부러워하면서도 섞일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랬던 내가 변하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차츰 나 자신과 주위의 무거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가 커지고 있다. 재미있고 단순하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에게 끌리고 있다. 세상살이 고민을 짊어지고 매사 투덜대는 사람보다는 순간의 기쁨을 알고 미소 짓는 사람을 만나 커피 한 잔이라도 마시고 싶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들에게서 배우고 느낀 대로 행동하려고 노력 중이다. 한없이 나를 끌어내리는 복잡함에 끌려가 고통스러워하는 대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마음의 유연함을, 상쾌한 공기를 마시듯 내 속에 채우고 있다. 


어차피 한 번뿐인 인생, 잘 닦인 길을 생각 없이 걸어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만큼 경험이 쌓였다고나 할까. 암을 만난 후 자연스럽게 유연함이란 친구가 어느 정도 내 속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스스로는 변할 수 없는 사람이었기에 암이라는 존재가 나를 변하게 했나 싶기도 하다. 5년 전 수술실 앞에서 나를 기다리던 남편은 옆에 있던 올케에게 물었다. 


"암수술하고 변한 게 있어요?"

"인생관이 바뀌었어요."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나도 "암이 준 선물"을 받고 살기 위해 인생관이 바뀌고 있다. 몸은 살이 빠져 쉽게 가벼워졌는데 마음은 아직 덜어내지 못한 게 많아 더 노력해야 한다. 


나를 둘러싼 가까운 사람들과 환경적인 제약 속에서 어깨에 놓인 짐이 무겁다고 고통스럽다고 헥헥 대는 대신 마음을 우선 돌보면서 앞으로도 조금씩 가볍게 나아갈 것이다. 소풍 가듯 인생을 살겠다고 거울 속 나를 마주하고 일기를 쓰면서 소소한 행복에 감사하며 가벼운 삶으로 이동 중이다. 


깃털의 가벼움이 아니라 새의 가벼움! 그래야 비상할 수 있고 정신의 자유를 누릴 수 있고, 높은 곳에서 멀리 볼 수 있다.

깃털처럼 중심도 방향도 없이 이리저리 부유하는 것이 아니라 새처럼 가볍게 날 수 있어야 한다. 새는 뼛속에 공기가 통하는 공간이 있어서 비행할 수 있듯이 존재 안에 자유의 공간이 숨 쉬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경박한 가벼움이 아니라 자유를 품은 가슴의 가벼움이다. 

                                                                         류시화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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