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67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주니 햇볕이 강해도 걸어 다닐 만했다. 나무 그늘에 서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 맛도 좋았다. 창문을 열어놔도 어딘지 답답한 집안보다는 역시 사방이 트인 집 밖에서 숨을 쉬는 게 참 좋다.
공기의 흐름이 느껴졌다. 내 속까지 흘러들어와 나를 가볍게 해 주었다.
애초에 난 무거운 사람으로 태어났다.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태어날 때 몸무게가 4kg 정도였다. 말이 늦게 트였다. 세 살 때 엄마가 동생을 낳으러 가면서 옆집에 맡겨놨는데 "물"이라는 고작 한 단어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해 "우쁘 우쁘"만 하다 물 한잔 못 얻어먹고 한없이 엄마를 기다렸다.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학생으로 자라면서 두통약을 달고 살았다. 도전은커녕 소심하게 피하는 방식을 선호하면서도 학교나 사회의 정해진 규칙은 누구보다 철저하게 지키며 살았다. 강박으로 가득 차 여유 없이 빠듯하게 살았다. 겉으로 보기에 당연히 무겁고 재미없는 사람이었다. 주변에는 나와 비슷한 느낌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하이톤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대부분 모노톤인 사람들은 드라마틱한 언변은 없지만 성실하고 진지했다.
젊은 시절, 단순하고 재미있는 사람을 보며 부럽기도 했지만 나와 결이 다른 가벼운 사람이라고 지레 판단하며 함께 있는 것을 불편해했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었음에도 당시에는 본 것만 믿었다. 그들의 능력을 부러워하면서도 섞일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랬던 내가 변하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차츰 나 자신과 주위의 무거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가 커지고 있다. 재미있고 단순하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에게 끌리고 있다. 세상살이 고민을 짊어지고 매사 투덜대는 사람보다는 순간의 기쁨을 알고 미소 짓는 사람을 만나 커피 한 잔이라도 마시고 싶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들에게서 배우고 느낀 대로 행동하려고 노력 중이다. 한없이 나를 끌어내리는 복잡함에 끌려가 고통스러워하는 대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마음의 유연함을, 상쾌한 공기를 마시듯 내 속에 채우고 있다.
어차피 한 번뿐인 인생, 잘 닦인 길을 생각 없이 걸어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만큼 경험이 쌓였다고나 할까. 암을 만난 후 자연스럽게 유연함이란 친구가 어느 정도 내 속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스스로는 변할 수 없는 사람이었기에 암이라는 존재가 나를 변하게 했나 싶기도 하다. 5년 전 수술실 앞에서 나를 기다리던 남편은 옆에 있던 올케에게 물었다.
"암수술하고 변한 게 있어요?"
"인생관이 바뀌었어요."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나도 "암이 준 선물"을 받고 살기 위해 인생관이 바뀌고 있다. 몸은 살이 빠져 쉽게 가벼워졌는데 마음은 아직 덜어내지 못한 게 많아 더 노력해야 한다.
나를 둘러싼 가까운 사람들과 환경적인 제약 속에서 어깨에 놓인 짐이 무겁다고 고통스럽다고 헥헥 대는 대신 마음을 우선 돌보면서 앞으로도 조금씩 가볍게 나아갈 것이다. 소풍 가듯 인생을 살겠다고 거울 속 나를 마주하고 일기를 쓰면서 소소한 행복에 감사하며 가벼운 삶으로 이동 중이다.
깃털의 가벼움이 아니라 새의 가벼움! 그래야 비상할 수 있고 정신의 자유를 누릴 수 있고, 높은 곳에서 멀리 볼 수 있다.
깃털처럼 중심도 방향도 없이 이리저리 부유하는 것이 아니라 새처럼 가볍게 날 수 있어야 한다. 새는 뼛속에 공기가 통하는 공간이 있어서 비행할 수 있듯이 존재 안에 자유의 공간이 숨 쉬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경박한 가벼움이 아니라 자유를 품은 가슴의 가벼움이다.
류시화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8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