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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Jun 27. 2024

오늘도 김밥을 싼다.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68

목요일마다 도시락을 싼 지 몇 달이 흘렀다. 수학학원을 마치고 30분 후 집 근처 문화센터에서 K-POP댄스를 배우는 딸은 언젠가부터 대놓고 바랬다.


"엄마, 오늘은 뭐 가지고 올 거예요?"


처음엔 빵을, 삼각김밥을 마트에서 사서 줬다. 간단히 먹고 저녁은 집에서 먹일 생각이었다. 딸은 생각이 달랐다. 저녁으로 먹길 원했다. 집에 있는 락앤락통 대신 자기만 쓰는 전용 사각통을 원해서 샀다. 그 안에 간식거리를 채우고 딸을 만나면 문화센터 한쪽에서 간단한 저녁을 먹는 루틴이 생겼다. 부담스러워졌다. 특별한 메뉴를 원하는 듯한 분위기를 맞춰주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딱히 떠오르는 것도, 요리책을 펴서 색다른 시도를 할 여유는 없었다. 쉽게 가기로 했다. 주말에 먹는 김밥을 평일에 싸서 주니 소풍 온 것 같다고 좋아했다. 김치볶음밥 위에 계란 프라이를 올려 뜨끈하게 갖다 주니 그것도 대만족이었다. 그렇게 격주로 목요일 저녁 메뉴는 김밥과 김치볶음밥으로 정했다. 딸에게 맞춰 자연히 아들과 남편은 선택권이 없어졌다. 곰손이라 특별한 재주가 없어 내 마음대로 메뉴를 고정시켰다. 다행히 시장이 반찬인지라 만족해하며 먹는다. 이번주는 김밥이다.


어제 밤늦게까지 학원 숙제한다고 식탁에 앉아 있었다. 일주일 전에 내준 연산 숙제였기에 미리 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주말은 쉬어야 한다고 팽팽 놀았다. 쳐다보는 내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현실 앞에 마침내 꼬리를 내리고 순응했다.


"힘들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언제 다해."

입에서는 쉼 없이 불평이 쏟아졌다.


'주말에 미리 했으면 좋았을 텐데'는 입밖에 내지 못하고 집안일을 하며 무관심한 척 지켜만 봤다. 어느 순간 조용해졌다. 몰입하는 듯했다. 꾸역꾸역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숙제를 하는 모습이 달리 보였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쇼츠에 시선을 고정하던 딸은 온데간데없고, 작은 손에 연필을 쥐고 집중해서 풀고 있었다. 누구나 몰입하는 모습은 왜 그렇게 아름다운지. 더구나 엄살 투덜이가 숙제에 깊이 빠져 있는 모습이 은근히 보기 좋았다. 남편도 오고 가며 딸의 어깨를 주물러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이들은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숙제는 해야 하는 것, 끝내야 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남편과 아들은 12시 전에 잠자리에 들고 딸과 나는 깨어있었다. 딸이 다 끝낼 때까지 소파에 앉아 책장을 넘겼다. 초집중으로 긴장한 딸의 눈과 달리 내 눈은 졸려서 풀려있었지만 예전에 엄마가 날 기다렸듯이 나도 딸을 기다렸다.


오늘의 김밥은 어제의 노력을 치하하는 뜻을 한껏 담아 말아주었다. 

햄 계란 치즈김밥. 평상시 못 먹는 햄을 공식적으로 마음껏 먹을 수 있게 김밥 속의 햄이 반이다. 무항생제 햄과 계란은 필수에 야채는 하나도 없다. 아이들 좋아하는 햄계치김밥. 내 어깨는 굳어 뻐근하고 손목은 아팠지만 잘 먹어주니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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