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69
"여기 이 색깔로 칠해요. 주황색부터 시작해요."
붓을 움직였다. 포스터물감의 질감이 느껴졌다. 부드러우면서도 축축하지 않은... 그러면서 유화 같은 꾸덕한 느낌이 살아있었다.
"엄마, 여기까지인데. 선이 넘어갔어요!"
"아. 미안. 붓이 움직이는 느낌이 좋아서 많이 칠해버렸네."
국민학교 때 불조심 포스터를 매년 그렸다. 1980년대였으니 지금처럼 포스터물감을 사용했을 텐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표어에 성냥에 불이 붙은 그림을 주로 그렸다. 큰 고민 없이 평범하게 그렸다. 미술시간마다 상상력부족과 자신감부족이 한 세트가 되어 그리고 싶은 그림을, 만들고 싶은 작품을 마음껏 표현하지 못했다.
딸은 시작도 먼저, 끝내는 것도 먼저 한다. 강제로, 자의 반 타의 반 붓을 들었던 나는 딸의 마음에 들지 못해 이내 자유로워졌다. 혼자만의 붓놀림에 빠져들었다. 특별히 무엇을 그리겠다는 생각 없이, 그저 동심원을 반복적으로 그리면서 단순한 붓놀림을 했을 뿐인데 나도 모르게 몰입했다. 곡선의 움직임에 빠져들면서 집중하니 머리가 맑아졌다. 누구를 위한 것도, 특정한 목적을 위해서도 아닌, 그저 혼자 장난하듯 색을 보고 칠하며 움직였을 뿐인데 기분이 좋아졌다. 수업시간이었다면 선생님이 평가하고, 친구들과 비교될 게 뻔해 부담감이 내 어깨 위에 앉아 붓놀림을 지켜보고 평가했을 테지만 혼자라 편안했다.
학창 시절, 성적이 반영되는 과목인지라 미술시간이 즐겁지만은 않았다. 졸업 후 자발적으로 붓을 드는 기회도 여유도 없었다. 아이들 덕분에 크레파스와 색연필부터 파스텔, 수채화물감 그리고 포스터물감에 이르기까지 추억의 도구를 쥐고 미술시간으로 되돌아가는 경험을 했다. 아이들을 위해 시작했지만 결국은 내가 가장 몰입하고 좋아했다. 마지막까지 색칠하는 사람은 항상 나였다.
혼자 있으면 절대 물감을 꺼내고 붓을 들지 않는다. 작년 말에 야심 차게 시작한 캘리그래피를 봐도 그렇다. 관심이 있다고 생각해서 취미로 키워보려고 수업을 들었지만 이어가지 못했다. 아이들 방학을 핑계로, 팔이 아프다는 핑계로. 부끄럽게도 6개월이 다 되도록 집에서 연습을 꾸준히 못했다. 서랍에서 붓, 먹물, 벼루, 화선지, 교본을 꺼내는 일이 이렇게 힘든 일일 줄은 몰랐다. 취미생활 영역인데도 강제와 자유의 적절한 균형이 어느 정도는 필요했다.
딸과 함께하는 미술시간도 곧 종강의 시간이 다가오겠지. 그전에 두 번째 기회를 얻은 학생으로서 마음껏 그리기를 이어갈 것이다. 딸과의 추억과 예전 나와의 추억이 씨실과 날실처럼 겹쳐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