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화강고래 Jul 03. 2024

인연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72

스쳐 지나가는 사이보다는 가까웠지만 그렇다고 사적인 이야기를 할 여유는 없었다. 약사와 손님으로 만난 우리는 거의 7년간 약을 주고받는 사이였다. 그것도 한창 바쁜 출근과 유치원 등원시간에. 출산 휴가 3개월 후, 육교 건너 맞은편 아파트에 사는 이모님이 큰 애를 돌봐주셨다. 애가 아프면 언제든 업고 갈 수 있게 본인의 집에서 가까운 소아과가 좋다는 의견에 따라 소아과를 바꾸게 되었고 그렇게 약사님과의 인연도 시작되었다. 우리 집 주치의나 되는 것처럼 아이 둘을 데리고 예방접종과 감기약 처방을 위해 병원과 약국을 한 달에 몇 번씩 드나들었다.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오기 전까지 다녔다. 


버스로 세 정거장 정도 떨어진 곳으로 이사 오고 아이들의 잔병치레가 줄어들자 자연스럽게 소아과도 약국도 멀어졌다. 울산살이 4년까지 합치면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작년에 용인으로 돌아오면서 자주 다니는 길목에 있는 그 약국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작은 체격에 생글생글 웃는 약사님이 여전하신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화창한 봄날이었다. 용기를 내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 아! 안녕하세요! 00 어머니 아니세요?"

"저... 기억하세요?"

"그럼요, 항상 단정한 세미정장 차림으로 애 둘 데리고 소아과 오셨잖아요. 00 많이 컸죠?"

"저, 울산 살다가 올라왔는데 지나가다 인사하고 싶어서 들어왔어요. 기억해 주시다니. 놀랐어요!"


그렇게 반가운 인사를 받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밀려드는 손님들 가운데 약을 받아 한쪽에서 물약에 가루약을 섞어 아이들 입에 넣어주고 뒷정리 후 가방 세 개를 들고나가기를 밥먹듯이 했었다. 피곤에 찌든 일하는 엄마의 모습이 그녀의 기억에 살아있었다. 초보 엄마였던 허둥대는 내 모습이 고스란히.


마침 손님이 없는 틈을 타 옛 친구와 수다를 떨듯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혀 어색함과 거리낌이 없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알고 보니 너무도 동안이었던 그녀는 나보다 여섯 살 위였다. 20대에 결혼해 딸은 대학원생이라 엄마역할에서도 선배였다. 언제든 편할 때 들려도 좋고, 시간을 맞춰 커피타임을 갖자고도 했다. 그렇게 작년부터 동네에 아는 언니가 하나 생겼다.


근처에 갔다가 약국문을 열고 인사를 했다. 여전히 소녀 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난겨울에 봤을 때보다 그녀도 나도 살이 빠진 것을 서로가 바로 확인했다. 나이 들수록 적당한 체중을 유지해야 골감소를 막고 일상을 활기차게 보낼 수 있으니 살을 찌우자는 공동의 목표를 그 자리에서 세웠다. 내 마음속 숨겨진 목표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한 그녀의 말에 잘해보자고 의미심장하게 화답했다.


"단백질을 충분히 꼭 챙겨 먹어라, 빵도 먹어라, 살이 쪄야 면역이 강화되고 피부재생도 빨라진다!"




작가의 이전글 장대비를 뚫고 간 곳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