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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Jul 07. 2024

시험 뒤풀이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74

언니, 주말에 애들 같이 게임해도 돼요?

시험 끝났다고 00이랑 같이 게임하며 놀고 싶다 해서요.


그래서 뒤풀이를 했다. 보통 시험 끝나면 아이들이 친구들끼리 밖에서 노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카들과 아들은 집에서 만났다. 아들은 중학교 1학년이지만 기말고사기간에 진단평가를 봤다. 첫 시험이라 긴장했을 법도 한데 겉으로는 지극히 평화로운 모습으로 이틀간 시험을 봤다. 시누네 고 2 아들과 중 2 아들도 지난주에 기말고사를 끝냈다. 그들이야말로 찐 휴식이 필요했을지 모른다. 같은 아파트에 2년째 살고 있지만 각자 학교와 학원에 다니며 마주칠 일이 없었다. 사춘기 아들들은 못 본 사이 익숙한 얼굴 속에서 조금씩 달라져 있었다. 설날에 시댁에서 만난 후 오래간만에 만난 아이들은 보자마자 씩 한번 웃더니 바로 소파에 앉아 게임을 시작했다.


늦은 점심으로 가장 좋아하는 메뉴인 치킨을 맘껏 먹을 수 있게 닭다리와 순살 후라이드를 펼쳐놓았다. 170센티가 넘은 무게감 있는 장정 세명은 씹는 둥 마는 둥 경쟁하듯 닭다리를 뜯고, 옆에서 남편과 딸은 천천히 순살 치킨을 먹었다. 나와 시누이는 점심을 먹었기에 따로 앉아 이야기를 했다.


네 명이 같이 있었지만 둘씩 게임을 하거나 각자 하면서 소파에서, 거실바닥에서 편하게 뒹굴며 시간을 보내는 듯했다. 대화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어쩌다가 말 한마디 툭툭 던지며 까르르 한번 웃고, 다시 게임 속으로 들어가고 나오기를 반복하기만 했는데 시간은 소리 없이 잘도 흘러갔다. 그렇게 딱히 노는 것 같지도 않게 오후를 함께 보냈다. 가상공간이 아닌 현실 공간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게임하며 놀고 싶었구나 싶었다. 


아들은 사촌 형들과 함께 성장했다. 태어나자마자 형들이 곁에 있어 같이 놀면서 놀이를 배웠다. 고모네 집에 가면 최신 유행 장난감과 풍성한 간식은 기본에, 함께 놀 형들이 있었다. 트램펄린 타기와 키즈카페 입장도 형들과 함께 시작하고 6살에 형들이 다니는 태권도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마치 삼 형제인 듯 잘 어울렸다. 특히 장난기 많은 큰형하고 잘 맞아서 둘이 형제인듯했고 한 살 많은 둘째 형은 조용하지만 세심한 성격에 우리 딸과 잘 어울렸다. 집 앞에 살고, 조카들을 챙기는 고모 덕분에, 일하는 엄마 덕분에 우리 집 아이들은 고모네집은 언제라도 가고 싶은 곳이었다. 


일 년에 한두 번 잠깐 만나고 헤어진 친척이 아니라 가능했다. 서로가 성장하는 모습을 눈으로 봤기에, 함께한 기억 편안한 느낌이 몸과 마음에 스며들어있었기에, 시험이 끝난 자유시간에 다른 어떤 활동보다 우리 집에서 게임하고 뒹구는 시간을 선택했다. 덕분에 아들도 자기 방에서 혼자 게임하며 보냈을 시간을 좋아하는 형들과 맛있는 치킨과 아이스크림을 마음껏 먹으며 생일 같은 하루를 보냈다. 친척이 많지도 않은 세상에 나온 아이들이 유년시절을 함께한 사촌이 있어 남다른 행복을 느끼며 자라서 늘 흐뭇하다. 앞으로도 건강하게 사이좋게 서로를 떠올리는 사촌간이 되기를 바라며 뒤풀이를 마쳤다. 



유치원 때 할머니댁에서 내복차림으로 포즈 취한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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