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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Jul 08. 2024

커피땡기는 날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75

아침부터 비가 내리쳤다. 역시나 장마 아니랄까 봐, 세찬 비가 사방을 적셨다. 월요일 아침, 비가 와서 게으름을 피울 법도 한데 운동 수업에는 결석 없이 전원참석한 듯 빈 공간이 없었다. 스트레칭과 스쿼트를 하며 주말에 밥하고 애들 챙기느라 쌓인 뻐근함을 어느 정도 털어내고 나니 개운해졌다. 집으로 오는 길 내내 머릿속에는 온통 커피 생각뿐이었다. 날이 화창해도 커피가 생각나는데, 하물며 비가 오는 날 커피를 지나칠 수 없었다. 비 오는 날의 파전과 막걸리는 대학생의 낭만을 논할 때나 있었지 지금은 없어진 지 오래다. 딱히 약속도 없는데 혼자라도 분위기 잡고 카페에 가야겠다며 집으로 들어섰다.


"친구야, 커피 마실래? 집 앞으로 갈까?"

"커피가 당겼는데 통했네. 와주면 나야 고맙지."


마음이 통했을까? 내 마음을 읽었을까? 같이 운동을 하고 헤어진 친구가 전화를 했다. 혼자도 좋지만 같이 마시면 더 좋을 것 같았다. 차를 가지고 10분 뒤에 도착한 친구와 함께 집 앞 카페로 갔다. 비가 와서 오히려 카페는 한산했다. 고요한 공간을 우리가 다 차지하고 창밖의 비를 가끔 쳐다보며 소소한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


그러다가, 얼마 전 독일로 연수를 떠난 친구이야기를 꺼냈다. 너처럼, 대학동창인 그녀가 가끔 차를 가지고 집 앞으로 나를 만나러 오면 근처에서 커피도 마시고 밥도 먹었다고. 안 그래도 요새 부쩍 그 친구가 생각났다. 베를린에 잘 도착했다는 메시지와 도시 풍경사진을 몇 컷 보내주긴 했었는데 적응은 잘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친구가 떠난 자리에 새로운 친구가 들어온 느낌이 들었다. 오늘 같은 날, 떠난 친구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한 명은 과거의 나를 알고, 다른 한 명은 현재의 나를 안다. 함께 한 시간과 추억 때문에 둘은 애초에 비교가 불가능할 텐데 곁에 있는 친구가 나를 잘 아는 듯한 착각에 잠시 빠졌다.


시절 인연이란 말이 있듯, 살아 보니 인생이라는 실 곳곳에 매듭을 짓듯 만나고 친하다가 멀어지는 인간관계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어릴 적에는 친구와 갑자기 혹은 서서히 멀어지는 경험이 무섭고 고통스러웠다. "우리 우정 영원히, 평생 친구하자"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며 학창 시절을 보냈으나, 반이 바뀌고 학교가 바뀌면서 그 말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차츰 몸으로 깨달았다. 인생의 통과의례처럼 사회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고 나서야 모든 일에 적당한 때가 있듯 인연도 다 때가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인연과 만나고 헤어질지는 모르나 가장 중요한 건 나를 지키는 일이라는 것 또한 덤으로 배웠다. 


내 인생의 지금 여기에 이 친구가 등장했다. 서로에 대해 세세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배려심과 인정이 있는 따뜻한 사람이라고 느껴진다. 어디선가 나타난 슈퍼맨처럼 등장한 친구가 혼자 비를 감상하며 멜랑콜리해졌을 나를 건져 올렸다. 서로가 친구가 되어 고맙다는 꽉 찬 말을 주고받으며 헤어졌다. 비 덕분에 커피를 나눴다. 시간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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