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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Jul 10. 2024

엄마도 엄마가 필요해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76

살아보니

젊은 엄마는 젊은 대로

늙은 엄마는 늙은 대로

엄마가 필요하다. 

그저 속마음을 훌훌 털어내면 훤히 드러난 마음을 토닥토닥해 줄 그런 엄마가. 




젊은 엄마였을 때 나도 엄마가 필요했다. 남들처럼 아이들을 잠깐이라도 맡기고 친구를 만나러 가고 싶었다. 남편에 대한 불만도, 회사에서 겪은 속상한 일도, 시댁에서 느낀 서운함도 엄마에게 다 털어놓고 위로받고 싶었다. 그런데, 난 그럴 형편이 못됐다. 결혼 전에 엄마한테 넘치도록 사랑을 받아서 그런지 결혼 1년도 안 되어 엄마는 평범한 일상을 누릴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과분한 사랑은 받고 자랐지만 기센 엄마라서 속 마음을 여과 없이 드러낸 적이 없다. 사춘기가 어떻게 지나갔는지조차 모르게 짜증도, 반항도, 소리 질러본 적도 없다.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못 할 것 같다. 엄마에게는 순한 양과 같은 딸일 뿐이다. 티격태격하는 모녀간이 가끔 부러워 보이는 것도 그런 이유다. 


늙은 엄마는 이제 나를 엄마같이 필요로 한다. 부모가 아파 세상을 뜨면 고아가 될 까봐 걱정하는 아이처럼, 엄마는 내가 먼저 죽고 혼자 남겨질까 봐 전전긍긍한다.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의지한다. 병원에서 겪는 크고 작은 속상한 일을 말하며 눈물짓고, 분하다고 성토한다. 주말에 만났을 때도 간호사의 언행으로 몹시 자존심이 상했다는 이야기를 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갈아입을 환자복이 필요하다는 엄마의 말에 몇 시간이 지나서야 바지 고무줄이 다 늘어져 입을 수도 없는 것을 내밀었다고. 못 입을 거 같으니 다른 옷으로 가져다 달라는 말에 자신을 쏘아보며 병원이 떠나가도록 소리치고 무안을 줬다고. 억울하고, 분하고, 속상하다고. 그렇게 털어놓고 나니 속이 좀 후련하다고 했다. 간호사가 너무 하다고 말은 했지만, 어설프게 맞장구를 친다한 들 엄마의 심정을 제대로 알 수 있을까 싶었다. 그 안에서 살아보지 않았기에 어떤 말로도 위로해 줄 수는 없어 그저 작고 뒤틀린 등을 쓰다듬기만 했다. 병원이라는 좁고 특수한 공간에서 똑같은 사람들과 매일 눈을 뜨고 감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짐작만 할 뿐이다. 미안함과 먹먹함이 내 가슴에 차 오르면 서둘러 아이 달래듯이 좋아하는 커피 우유와 간식하나 더 챙겨 드리는 못난 딸이다.


다른 늙은 엄마는 시누이가 있어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웬만하면 신세를 지지 않으려고 하니 무늬만 며느리이다. 요새 기억력이 안 좋아지셔서 여러 검사를 하셨다. 결과를 듣고 어떤 말로 위로의 전화를 해야 할지 머릿속에서만 시나리오를 몇 번이고 쓰다 통화버튼을 눌렀다. 다행히 어머니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셨고, 예상외로 큰 부담 없이 대화를 이어갔다. 그러다가 울먹이셨다. 


"내가 어떻게 될지 무섭고, 걱정돼. 겪어보지 않아서 더 무서워."


경험해 보지 않은 미래, 그리 멀지 않은 몇 개월, 몇 년 후의 모습에 대해 두려워하셨다. 누구나 처음 살아보는 인생이라 어떤 길을 걸어가게 될지, 무섭다. 특히 노년의 삶은 두려울 수밖에 없다. 눈앞에 닥친 아픈 노인의 삶은 누구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괜한 말을 했네. "

"아니에요. 딸한테만 이야기하지 마시고 저한테도 편하게 이야기하세요. 불편하시면, 가끔이라도 들어드릴게요. 큰 도움이 안 될지라도 속 마음을 말하고 나면 후련할 때도 있어요."


두 엄마의 말을 열심히 듣기로 했다. 누구나 엄마가 필요하다. 그저 생각만으로도 든든한 내 편인 엄마가 아직은 아프더라도 내 곁에 있다. 엄마들도 낳고 키워준 엄마가 보고 싶고, 엄마한테 말하고 싶을 것 같다. 힘들다고, 무섭다고. 엄마로서만 살아온 두 분이 가끔은 나를 엄마라고 생각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부쩍 들기 시작했다. 딸로 살았던 시절로 돌아가게 해 드리고 싶다. 물론 내 마음이 힘들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 또한 많지 않다. 


쓸쓸한 노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저 한 가닥 연민뿐이니 그것 또한 서글프다.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중 "노인"> 박완서, 3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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