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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Jul 11. 2024

맘껏 즐길 수 없어, 미안하다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77

날이 더우면 더울수록 집 앞 슈퍼마켓은 아이스크림을 고르는 아이들과 엄마들로 북적인다. 저녁 먹고 슈퍼 앞을 지나갈 때면 퇴근길 아빠들도 냉동고 앞에 서서 이리저리 살핀다. 차가운 아이스크림 하나 베어 물면 더위가 잠시 잠깐이라도 물러가는 듯하다. 순식간에 몸이 차가워지는 그 맛! 나는 기억한다. 쌍쌍바 사서 친구랑 나눠 먹고, 스크류바를 입에 넣어 돌리고 돌려 먹었고, 구구콘과 월드콘은 기본에, 하겐다즈와 배스킨라빈스도 즐겼다. 이제는 안 먹고 바라만 보고 살지만, 가끔 예전처럼 차갑고 달달한 걸 마음껏 먹고 싶다.


주말 아침부터 냉장고 문을 열고 아이스크림을 꺼내는 남편을 봤다. 


아침부터 아이스크림을 왜 먹어?

00가 먹을까 봐.

어제도 두 개나 먹었는데, 또 먹으려고?

00은 어제 세 개 먹었어.


아들과 아이스크림 먹기 시합하는 것도 아닌데, 아빠는 아이스크림을 진심으로 좋아한다. 애들 손님 온다고 사놓은 아이스크림이 남자, 아들이 먹기 전에 남은 아이스크림 중 한 개를 얼른 먹어치운다. 어쩌다 냉장고에 아이스크림이 보이면 식구들, 특히 아들과 아빠는 급하다. 먹을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냉동실에 아이스크림이 상비약처럼 구비되어 있으면 좋은데, 다 내 탓이다. 암과 동행하는 일상을 살게 되면서 아이스크림과 과자 같은 간식을 집에 쌓아두지 않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한두 번 먹고 싶다고 할 때만 사 주었더니 이제는 적응이 되어 식구들이 그려려니 한다. 


울산에 살 때 아파트 앞에 동네 슈퍼가 있었다. 네 번의 여름을 보내는 동안, 퇴근길에 남편은 과자며 아이스크림을 한아름 사들고 집에 왔다. 가끔 같이 슈퍼에 가면 주인아주머니가 놀랄 정도로 과자와 아이스크림으로 20kg 종량제 봉투를 가득 채워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꾸러미를 만들었다. 흐뭇한 표정으로 아이들과 본인이 좋아하는 간식을 나눈 뒤 며칠 내 먹어 치우기가 일상이었다. 우리 집의 간식함은 아빠가 채워주는 셈이었다. 남편이 알아서 사 오니 나까지 보탤 이유가 없었다. 


물론 지금도 아파트를 나서자마자 슈퍼가 있지만 이제는 예전 같지 않다. 내가 먼저 변했고 남편이 뒤따라 달라졌다. 나도 한때는 에이스와 새우깡을 좋아하고 여름이면 아이스라테와 아이스크림으로 더위를 식히는 사람이었다. 찬 것과 단 것을 속에 넣으면 몸이 견디지 못해 안 먹고살다 보니 가끔 애들이 한 개씩 입에 넣어주는 과자는 꿀맛이면서 동시에 너무 달아 자극적이다. 간식은 먹으면 먹을수록 단맛에 길들여져 미각이 둔해지는 것 같다. 남편은 우리가 울산을 떠나기 직전, 당뇨 진단을 받자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칼같이 끊었다. 건강이 중한지라, 입에 달고 살던 간식을 끊고 저녁마다 아파트 단지 내를 대여섯 바퀴 돌기를 하며 건강을 챙겼다. 그 덕분에 8개월 만에 몸무게는 10kg이 줄고 혈당지수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때 우리는 군것질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력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 


급한 불을 끈 뒤 남편은 슬금슬금 간식에 다시 손을 대기 시작했다. 물론, 예전 울산에서 만들던 산타할아버지 보따리는 버렸지만 한 달에 한두 번 슈퍼에 들러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온다. 술, 담배도 안 하는데 좋아하는 간식이라도 마음껏 먹게 할까 싶다가도 당뇨 진단을 받은 사람이라 걱정스러운 마음에 마음 편히 사서 줄 수가 없다. 저당 아이스크림도 출시되어 소비자를 유혹하나 그래봤자 설탕과 우유에 감미료를 넣어 얼린 디저트기에 최소한으로 먹게 한다. 내 눈앞에서만이라도. 건강에 좋은 먹거리였다면 음껏 사두고 싫증 나도록 먹게 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 가끔 아이스크림 전쟁이 일어날 때면 웃기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하다. 다 내 탓이다. 암을 알고 보니 세상에 유혹은 많고 몸에 좋은 건 별로 없어 식구들도 반강제적으로 나를 따를 수밖에 없다. 


아이스크림!

참 시원하고 맛있는데 건강에도 좋아 매일 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더위를 한방에 알려버릴 수 있는데, 아쉽다. 아쉬워.

그래서 우리는 미안하지만 가끔씩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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