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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Aug 17. 2024

난생처음 혼자 간 결혼식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97

하기 싫지만 해야 할 이유를 찾는 사람이 있고, 할 수 있지만 하지 않을 이유를 찾는 사람 있다. 어떻게든 이유를 찾는 게 사람이 잘하는 것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처음 청첩장을 받았을 때는 솔직히 가고 싶은 마음과 가기 싫은 마음이 둘 다 내 속에 있었다. 그런데, 날짜가 다가올수록 가야 하는 심리적 이유가 못 가는 핑계로 쓸 만한 이유를 가볍게 눌렀다.


가야 해.

둘 사이를 아는 어린 딸도 "엄마, 당연히 가야지."라고 거들었다. 

맞아. 가야지. 어떤 핑계를 대도 부족하지.


혼자 가는 거?

이런 건 처음이지만, 꼭 봐야 하는 주인공 한 사람만 보면 되지.


입고 갈 옷이 없는데?

누가 내 옷차림을 본다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데. 그냥 입고 가면 되지.


멀어서? 

멀긴 하지만 갈 수는 있지. 지하철이 있잖아. 


용인에서 서울 문정동지 신분당선, 수인분당선, 8호선을 타고 1시간 30분 걸려 결혼식장에 도착했다. 비취색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신랑어머니 자리에 서서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는 그녀의 얼굴을 보니 낯설면서도 반가웠다. 손을 맞잡으며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북적이는 웨딩홀에서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서 있었지만 오길 잘했다 싶었다. 


6년 전 번역 학원을 다니며 알게 된 그녀는 50대 후반이다. 큰 언니뻘이다. 스터디를 하며 친분이 쌓일 즈음 내가 울산으로 내려갔지만 꾸준히 연락하며 투병을 시작한 나에게 용기를 줬다. 본인의 엄마도 유방암을 경험했지만 80세가 넘은 지금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신다는 말부터 꺼냈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답게 소설과 에세이 위주의 책 선물을 꽤 많이 했다. 가족과 울산으로 여행 왔을 때에는 저녁에 택시를 타고 우리 집 근처까지 와서 얼굴을 보고 갔다. 여전히 우리는 서로 안부를 챙기고 답답한 속내를 털어놓는 특별한 사이이다. 학교 졸업 후 나이 들어 만난 인연 중 유일하게 깊어진 귀한 인연이다. 


그래서 혼자서 약간은 긴장된 마음으로 결혼식장에 발을 들였다. 친인척 결혼식이 아닌 지인 결혼식 자체가 가뭄에 콩나기가 되었는데, 친한 언니의 아들 결혼식에 초대받아 가니 색달랐다. 평소 거칠 것 없어 보이는 그녀도 아들 결혼식장에서는 작고 연약해 보였다. 엄친아로 자란 신랑이 20대여서 그런지 친구와 동료로 보이는 젊은이들로 웨딩홀이 북적였다. 신부는 일본인이라 상대적으로 하객은 적어 보였다. 20대 결혼에, 국제결혼이라 보기 드문 화기애애한 결혼식 풍경을 지켜봤다. 


혼밥은 먹지만 혼 뷔페는 처음 해봤다. 얼굴만 보고 갈까 했었다. 바로 돌아서서 가기에는 온 시간이 아까워 숨도 돌릴 겸 뷔페도 먹을 겸 먹고 가기로 했다. 오랜만에 만난 결혼식 뷔페에는 일식, 중식, 한식, 디저트가 가지런히 나에게 손짓하며 놓여 있었다. 식이 끝나기 전이라 식사하는 사람이 한눈에 보일 정도였는데 8인용 테이블에 혼자 앉아 먹는 게 사실 불편했다. 먹은 접시를 두고 새 접시에 음식을 담아 오는 행동마저도 테이블만 쳐다보고 있는 서빙 직원들의 시선 안에 포착되는 듯했다. 혼자만의 느낌이겠지만. 오후 4시가 넘은 시간이기도 해서 평상시보다는 배불리 먹지 않았다. 결혼식장에 아는 사람이 많으면 복장과 행동하나하나에 신경이 쓰이겠지만 홀로 있는 것 또한 생각보다는 편치 않았다. 내 성격 탓이겠지.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아직도 주위를 의식하다니. 그래도 둘 중 택하라면... 글쎄 비등하지만 얼굴만 아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어색하게 있는 것보단 혼자가 나을 거 같다. 언젠가 또 혼자 결혼식장에 오게 된다면, 그때는 오늘보다는 나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슬며시 생겼다. 


잠깐 어색해도 혼자서 축하해 주러 오길 잘했다. 잘했어, 잘했어. 15- 20년 후쯤 언니처럼 나도 신랑의 엄마로 인사하고 있을지 아님 상상하지 못했던 결혼식장 풍경을 경험할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건, 내 아들이 결혼을 한다면, 다른 여자의 남자로 살아간다고 온 세상에 선포한다면, 가슴이 벅차고 동시에 허전할 것도 같다. 벌써부터 사춘기라고 거리가 조금씩 멀어지고 있는데, 그 거리감을 어떤 식으로 조절하고 받아들여야 할지가 부모와 자식이 함께 풀어야 할 숙제같이 느껴진다. 자식의 입장이 아닌 부모의 입장에서 참석한 첫 결혼식이라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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