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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Aug 28. 2024

너도, 나도 이것저것 골라 써보자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202

"개..., "

"헐"

"대박"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들이 쓰고 듣는 신조어이다. 언제부터인지 기억나진 않지만, 유튜브를 통해 습득한 단어인 듯싶다. 이 중에서 접두사 '개'를 명사, 형용사, 동사 앞에 붙이면 "개이득, 개꿀, 개웃김, 개사기, 개득템, 개싫다, 개맛있다, 개부럽다" 등 여러 단어가 만들어진다. 입에 척척 달라붙는 듯 자연스럽다. 기성세대인 내 귀에는 '개'의 어감이 그리 좋게 들리지 않지만, '개' 뒤에 오는 어휘를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자기들 딴에는 강조하기 위해 열심히들 쓴다. 요즘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와의 차별성, 반항심, 개인의 직설적인 감정표현을 위해 사용한다고 한다. 


아들도 게임할 때면 자기도 모르게 "개이득, 개꿀, 개부럽다"를 스스럼없이 사용하는 걸 보면 얼마나 일상어가 되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남자아이들의 전유물인 듯한 '개' 접두사 사용과 달리 딸아이는 '헐, '과 '대박'을 주로 쓴다. 주변 어른들도 두 가지 단어만큼은 생활어처럼 자연스레 쓴다. 순간 내뱉는 감정 형용사 같은 두 단어. 너무나 다양한 상황 속에서 개별적이고 복잡한 감정까지도 한 마디로 덮어버리는 굉장히 파워풀한 어휘임에는 틀림없다.  


책 <하루 한 장 나의 어휘력을 위한 필사 노트>에서, 유선경 작가는 힘센 어휘 하나가 나머지 어휘들을 잡아먹는 경우를 "승자독식 (93-95)"이라고 표현한다. 대표적인 예로 위의 신조어를 언급했다.




몹시, 굉장히, 대단히, 무척, 잔뜩, 한껏, 힘껏, 매주, 아주, 가장, 제일, 너무, 너무나, 완전히, 정말로, 되게, 된통, 지지리, 지긋지긋하게


뜻밖이다, 의외다, 놀라다, 당황하다, 혼란스럽다, 느닷없다, 맥 빠지다, 질겁하다, 기겁하다, 질리다, 황당하다, 엉뚱하다, 어이없다, 어처구니가 없다, 기가 차다, 특이하다, 별스럽다, 별나다, 괴상하다, 이상하다, 수상하다, 기이하다, 기묘하다, 묘하다


대박

놀랍다, 굉장하다, 뛰어나다, 엄청나다, 기막히다, 대단하다, 신기하다, 색다르다, 경이롭다, 쇼킹하다, 경악스럽다, 훌륭하다, 감동이다, 감격하다, 감명 깊다, 감개무량하다, 아름답다, 장관이다, 기대 이상이다, 예상치 못했다. 압도적이다, 압권이다



단어 하나하나를 자판으로 두드리니 더욱더 미묘한 차이에 따른 감정의 깊이가 달리 느껴졌다. 영어에 비해 우리말은 표현이 다양해서 번역할 때마다 그 뉘앙스를 담지 못하는 아쉬움에 능력 부족을 한탄하기도 했었다. 사용하는 어휘가 얼마나 빈약하고 한정적이었는지, 필사를 하면서 매번 쓰는 단어만 닳고 닳도록 쓰고 있음을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 반성과는 별개로 책을 멀리하는 아이들의 어휘력 성장이 제대로 이루어질까 하는 염려가 뒤따랐다. 글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과 생각을 한 두 마디로 순식간에 내뱉고 웃어넘겨야 할 만큼 빨리 돌아가는 세상에 살아가는 아이들이 안타깝기도 했다. 유행어랍시고 다양성을 무시하고 획일화된 표현에 익숙해지면 일상이, 나아가 인생의 복잡함을 이해하고 헤쳐나가는데 답답하고 고통스러울 것 같다. 알고도 안 쓰는 것과 모르는 것은 다르다. 분위기 맞추느라, 유행에 따르느라 신조어를 쓰더라도, 내 안의 풍성함은 내가 키워야 한다. 편식보다는 골고루 건강하게 어휘반찬을 섭취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잘 알고 표현할 줄 아는 성인이 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의도적으로 아이들과 대화할 때 대체가능한 단어들을 이야기해 주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야겠다.


책은 언제나 가슴 벅차게 설레게 만드는 힘이 있다. 

반성하고 배우고 나아질 수 있다는 기대를 품을 수 있다. 

어휘력의 빈곤이 탄로 나지 않았는지 되짚어 읽어보며 용기 내서 써본다.  

너희들도, 나도 골라서 잘 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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