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203
집 앞 소아과 오픈런을 했다. 며칠 동안 감기로 힘들어하는 딸아이를 데리고 등교 전 병원을 찾았다. 문 앞에 우리보다 먼저 온 5팀이 줄 서 있었다. 8시 25분이 되자, 병원문이 열리고 밖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시원한 에어컨바람이 맞이하는 실내로 들어섰다. 순서대로 간호사에게 접수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우리 앞에는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아이 둘, 겨우 엄마라는 발음을 뭉개면서 한 두 마디 하는 아이 셋이 있었다. 신기하게도, 아이들이 모두 책을 가지고 엄마옆에 앉았다. 소아과에 올 때마다 궁금했다. 여기서 보는 아이들은 집에서 책을 가까이하는 습관대로 책만 보이면 엄마한테 책을 가져가는 걸까?
어느 병원이나 진료 대기는 기본이라 기다리는 시간이 길고 무료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우리 집의 경우만 봐도, 초등 2학년까지는 심심해서라도 책을 꺼내와서 책장을 넘겼다. 이후에는 소아과에 있는 책이 수준이 낮다고 얕잡아보고 쳐다보지 않는다. 스마트폰이 생기고 나서는 아예 책은 관심밖이다. 보통 초등학생만 되어도 주로 스마트폰을 보는데 어린아이들은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다. 꼼짝 말고 가만히 있어야 하는 시간이 찾아오면, 한창 호기심 많고 가만히 있기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위해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이란,
1) 엄마와 아이가 같이 TV를 보며 간간이 대화를 나눈다.
2) 엄마는 스마트폰을 보고 아이는 병원에서 틀어주는 "뽀로로와 친구들"을 쳐다본다.
3) 엄마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준다.
여기서 관찰한 바로는, 그냥 TV나 스마트폰을 보게 하는 방임형이 아닌 엄마의 정성이 들어간 맞춤형 돌봄을 한다는 것이다. 선입견일 수도 있지만 젊은 엄마들일수록 책을 많이 읽어주는 것으로 비친다. 언제 어디서든 육아에 진심인 엄마들이 참 많다. 그들의 노고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매번 감탄한다.
소아과 한편에 서 있는 작은 책장에서 책 한 권을 한 손으로 힘겹게 들고 와서는 엄마 앞에 내밀고 읽어 달라는 아이들을 종종 본다. 소곤소곤 천천히 읽어주는 엄마의 목소리에 빠져드는 아이들이 있다. 자신들만의 이야기 세상 속에 빠져 조용하다. 타인에게 큰 방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보기에도 흡족하다.
혹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저기 책 있네"라고 하면서 아이들을 유도하는 엄마가 있다. 책을 꺼내오라고 손짓하는 엄마옆에 앉으면 엄마는 열심히 또박또박 읽기 시작하나, 아이의 시선은 이내 딴 곳을 향한다. 동화구연하듯, 상황에 몰입해서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읽어내는 대담한 엄마들도 있다. 빈 수레가 요란하듯, 과시하듯 책을 읽어주려고 애쓰는 엄마들을 보면 더없이 불편하다.
독서는 중요하다고 누구나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어디서든 정도에 맞게 독서하는 풍경이 아름답게 느껴져 나도 모르게 부러운 마음에 이처럼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내 경우를 생각해 봤다. 난 책을 잘 읽어주는 엄마가 아니었다. 내가 항상 피곤하니 집에서든, 외출해서든, 먼저 읽어주려고 애쓰지 않았다. 아이들이 책을 가져와서 읽어달라고 하면 읽어주는 수동적인 엄마였기 때문에 가끔 후회스럽다. 내가 애쓰지 않은 결과로 우리 집 아이들은 책을 멀리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유아기 때부터 책을 읽어주고, 눈을 맞추고 대화를 많이 하는 환경에서 자라야 아이들이 책을 편하게 생각한다는데, 그런 탓인지 우리 집 독서습관은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했다. 부모는 책을 가까이하나, 자식들은 책을 멀리하는 집안이다. 현재는.
부디, 지금처럼, 소아과에서 본 아이들이 어디서든 책을 가까이하는 아이로 자랐으면 한다. 남의 집 자식이라도 생각하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 내 아이는 책과 가까이 지내는 것에 실패했지만, 책 읽는 사람을 보는 마음만은 흐뭇하다. 서점이든, 도서관이든 책을 찾아다니며, 책을 사달라고 하는 아이로 키우지 못해서 아쉽고 또 아쉽다. 그래도 아직은 포기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 멈춰버린 우리 집 독서 열풍이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여전히 책을 쇼핑하고 있다. 멈출 수 없는 부모의 마음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