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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Sep 01. 2024

바라는 건, 전화 한 통...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204

입 밖으로 꺼낸 말 한마디가 주변 사람의 기분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데... 그 타이밍을 적절하게 맞춰 상황에 맞게 말을 쏘아 올리는 게 어려운 사람도 있다. 너무나 가까워 자칫 소홀하기 쉬운 가족 같은 관계에서는 말해 뭐 할까.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에서, 특히 보통의 K 아들은 얼마나 자주 부모님께 안부전화를 하는지 궁금하다. 남동생은 1주일에 한 번 엄마물품을 주문하면서 한다.




공인된 "효자"였던 아빠의 딸로 살았다. 지금은 부모님께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남편의 와이프로 살고 있다. 그 덕분에 며느리 역할에서 무척 자유롭다. 아프고 나서는 내 한 몸 건사하라고까지 하신다. 가끔 안부 전화하고, 찾아뵙는 정도이니 이렇게 해도 되나 싶을 정도이다. 시부모님은 물론, 손아래 시누이도 남편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장남의 무게라는 건 없어 보인다. 각 가정이 별 탈없이 살기를 바라기에 효도를 강요하지도 바라지도 않으신다. 다만, 시누이는 가끔 남편에게 말했다.


"오빠, 엄마한테 안부 전화만 해줘. 엄마가 오빠 전화받으면 그렇게 행복해 할 수가 없어. 내가 백날 잘해도 오빠 전화 한 통이면 다 끝나."


그 말을 들은 후부터, 주말이면 숙제 검사하듯 남편에게 상기시켜 줬다.


"이번주에 전화 한 번이라도 했어? 안 했으면 지금이라도 꼭 해.

 아들이 전화해 주면 엄마들은 좋아해. 우리 엄마도 좋아해. 제발 좀 해."


그렇게 to do list에 있는 항목이 되어버렸지만 의무감에 하는 건 한계가 있었다. 남편이 전화를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과는 별개로 자주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 모르게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며칠 전 시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치매 검사 결과가 이때쯤이면 나왔을 텐데라는 생각에 전화를 걸었다. 설마 했는데, 이미 진행 중이라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듣고 하루하루 힘들게 지내고 계셨다. 설사, 메슥거림, 불면증이라는 약부작용으로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다고. 가끔 뵙는 우리에게는 치매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는데 가슴이 철렁했다. 80세를 앞두고 그 연세를 넘는 노인들을 검사하면 반 정도는 판정을 받을 정도로 노후의 보편적인 질병인 것 같다는 말씀에 그동안 말로만 듣던 치매라는 질병의 존재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나마 서둘러 검사를 한 덕분에 초기 판정을 받아서 다행이라는 씁쓸한 위로를 서로 전할 뿐이었다. 기대 수명이 길어졌지만, 무병장수대신 유병장수 시대가 되었으니 오래 산다는 게 축복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어머니와 통화를 하면서 그저 들으며 안타깝고 죄송한 마음뿐이었다. 아들은 아들대로 하고, 며느리인 나라도 열심히 챙겼어야 하는데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디 무거웠다. 이래서 며느리를 남이라고 했던가. 내 부모한테 효녀, 시부모한테 효부가 되겠다는 꿈을 감히 꾸지 않는 평범한 딸이며 며느리일 뿐이지만 마음만은 앞서간다. 주말마다 시댁에 가는 시누이에게 톡을 했다.


그리고 전화통화를 했다.

그동안 쌓였던 서운한 마음과 분노가 폭발했다.

마치 남편이 내 아들인 것처럼, 같이 사는 내가 부모가 되어 자식이 잘못한 것을 사과라도 하듯, 연신 미안하다는 말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시어머니와의 통화로 내가 스스로 상황을 파악하기 전날, 시누이가 남편에게 톡을 보냈다고 했다. 특별한 답장 없는 남편의 반응에, 그래도 어머니께 전화는 했겠지라고 생각했단다. 그런데, 전화 한 통화 없는 그의 행동에 시누이와 어머니는 서운함에 펑펑 울었다고 했다. 다른 때도 아니고, 노후의 가장 피하고 싶은 그 질병인, 치매를 진단받았는데, 전화 한 통화 없는 아들은 어머니의 가슴에 눈물과 후회만 남긴 게 분명했다.


결혼 초, 어머니가 황반변성 진단을 받자마자 남편은 본가로 쏜살같이 달려가 의사처럼 질환에 대한 설명과 함께 눈에 좋다는 약과 영양제를 구입했다. 그때의 지대한 관심과 민첩함에 감동을 받은 어머니는 지금도 말씀하신다. 역시 우리 아들밖에 없다고. 


그런 남편이 이번에는 왜, 전화 한 통화에도 이리 인색한지 모르겠다. 물어봐도, 별 반응이 없다. 주말에 서울에 가보자고 해도 무반응... 평상시 안부전화도 아닌, 특별한 상황에서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반짝 힘을 낼 수 있는 엄마 마음을 그리 몰라줄까? 남편의 이런 모습을 내 아들도 자라서 따라 할까? 이번에는 남편이 이해되지 않는다. 전화 한 통화의 의미를 왜 모를까? 묵묵히 성실하게 살아줘서 고맙다고 매번 뿌듯해하시는 시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르며 남편이 딴 사람처럼 멀게 느껴졌다. 전적으로 내게 의지하는 엄마로 인해 가끔 힘들다고 투덜대는 나와 달리 가족 간에도 적절한(?) 심리적 거리를 두고 사는 것 같은 남편이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고, 사는지 잘 모르겠다. 




부모자식 관계가 서로 부담되지 않도록 살아가려고 애쓰는 세상에 살아가고 있다. 자식에게 기댈 수도 없고, 기대고 싶지 않기에 우리의 노후는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생각으로 건강과 자금을 쌓아가면서 미래를 준비한다. 시부모님의 독립된 노후생활을 본받아 우리도 노력하고 있다. 어쩌면 경제적 독립은 뼈를 깎는 노력으로 가능할 수 있지만 정신적 독립은 물보다 진한 끈끈한 피로 연결되어 있어 애초에 불가능해 보인다. 느 정도의 거리는 유지해야 서로가 안정적으로 살 수 있지만 너무 무심해도, 이건 아닌 것 같다. 마음이라는, 형체는 없고, 만질 수는 없지만 느껴지는 고것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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