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친구들은 야식 먹는데요. 치킨, 라면, 피자를 먹는다는데 우리는 왜 안 먹어요? 매일 라면은 기본이래요. 저도 먹어보고 싶어요.
밤늦게 먹는 건, 건강에 안 좋아. 습관 되면 안 좋아. 고치기 어려워.
배고프게 자는 게 싫은데...
안 돼, 안 돼라는 말만 했다. 미안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
학원 수업 후 10시가 넘어 집에 오는 아들은 보통 시리얼이나 과일을 먹고 12시가 되기 직전, 잠자리에 든다. 안 먹고 그냥 있다가 잘 때도 있지만, 참을 수 없이 배고플 때는 냉동 브리또 2개를 순식간에 데워먹고 곧장 자러 간다.
"과한" 야식을 키우지 않는 집에서 한동안 외롭게 야식을 꿈꾸는 노래를 불렀다. 안된다고 말은 했어도 안 주는 내 마음도 편치 않았다. 내 고집대로 쭉 밀고 나갈까 하다 또래 아들을 키우는 지인들과 얘기해 보니 내가 잘못하는 거였다.
"그냥, 원하는 대로 다 줘. 소화가 왕성한 10대인데, 폭풍성장하는 중이잖아. 다이어트하는 것도 아닌데 먹고 싶은 거 줘야지! 공부하잖아!"
슬쩍 맘카페도 들어가 보니, 역시나 비슷한 답변이 주를 이루었다. 특히 딸에 비해, 아들은 식욕이 왕성하니 안쓰러운 마음에 늦은 밤에도 고기를 구워주는 집도 있다고 했다. 먹고 싶은걸 안 주는 계모 아닌 계모가 된 느낌? 이 들었다. 굳이 야심한 밤에 소화 안 되는 음식을? 주고 싶지만, 안 주는 엄마 마음은 없고, 쓸데없이 미리부터 걱정하는 고지식한 엄마의 모습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배불리 먹고 바로 자는 습관을 키울까 그게 무서웠다. 내 몸이 아니더라도 내 손으로 내 앞에서 아들의 몸이 인기 있는 야식과 과식으로 망가지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아팠기에, 아이들도 웬만하면 건강한 습관을 들여 키우려 한 것이 너무 내 기준으로 통제하려든 꼴이 된 건 아닐까 잠시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아프기 전에도 밤 9시가 넘으면 잘 안 먹었다. 타고나길, 기름지고 맵고 짠 음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밤에 먹는 일은 어쩌다가 늦게까지 이어진 술자리에서나 있을까 말까. 저녁 먹고 살짝 배고프다는 신호가 느껴지는 빈속으로 자는 것이 편안하다. 변함없이. 그런 엄마의 아들로 태어난 게 아들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었다.
아들에게 내 입장만 강요한 것 같아 미안해졌다.
과한 야식은 아니더라도 시리얼보다는 약간 위를 채울 야식을 찾아봤다. 배고파서 잠을 못 자겠다는데 잠이라도 푹 자게 해 줘야지 싶었다. 밤에 먹을 만한 야식으로 달걀, 두부, 바나나, 키위, 아몬드, 그릭요구르트, 훈제오리가 눈에 띄었다. 내 눈에는 괜찮아 보였지만, 아들 입장에서 보니 먹을 만한 게 하나도 없었다. 쉽게 먹을 수 있는 바나나와 달걀, 그리고 고구마와 감자를 입에 대지 않는 아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정녕 라면과 피자, 치킨, 떡볶이가 등장해야 할까? 그렇다고 그동안 쌓아 올린 이런 음식들에 대한 빗장을 순식간에 풀어버리기에는 앞으로의 학원생활이 길고 험난하게 느껴졌다.
반성만 했다. 집집마다 아이마다 다르니 이 또한 상황에 따라 아이와 이야기하면서 맞춰보기로 했다. 아들과 함께 결론을 내렸다. 학원 가기 전에 일단 배부르게 먹고 다녀와서는 간단히 먹고 자는 쪽으로 해보자고 이야기하니 아들도 일단은 수긍했다. 야식 노래가 좀 뜸해진 걸 보면 엄마의 마음을 알고 단념했는지도 모르겠다. 달라는 데로 주자는쪽과 부담 덜 되게 주자는 대결에서 후자 쪽으로 정했다. 현재는 내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만큼 위에 부담을덜 주는 쪽으로 한동안은 유지할 것이다. 지금껏 과하게 안 먹고 지냈으니 아들도 크게 욕심내지는 않을 거 같은데 지켜보기로 했다. 완전한 사춘기 모드로 돌입하지 않아 말을 들으니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아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수준에서 야식을 줄 것이다. 깜짝 야식 선물은 비장의 카드로 숨겨둘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