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화강고래 Sep 04. 2024

속보를 주세요.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206

5년 넘게 대학병원을 들락날락거리다 보니 자연스레 글쓰기 소재로 자주 쓴다. 


분당에 있는 대학병원은 평일 오전에도 주말 쇼핑몰만큼이나 북적였다. 오전 9시쯤 도착한 채혈실은 대기 시간이 40여분이었는데, 오후 1시가 넘어 병원문을 나설 때도 역시나 혼잡했다. 연달아 영상의학과에서 가슴 X선 촬영과 핵의학과에서 뼈스캔검사를 했다. 


의료대란이 반년 넘게 이어지고 있지만 사실 정기검진 목적으로 최소 한 달에 한두 번은 병원을 찾는 나에게 피부로 느껴지는 차이는 거의 없었다. 딱 한번 당당 교수의 휴진참여로 진료가 연기된 거 말고는 없다. 개인적으로 그저 운이 좋은 거였다. 언제까지 운에 맡기며 불안한 의료현실에서 하루하루 버텨야 하는지...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지고 있는 건 누가 알기나 할까? 서로 자기 쪽으로 잡아당기다가 뚝 부러지면 그 고통은 누구의 몫이며, 과연 뒤늦은 수습으로 테이프나 풀 같은 임시방편으로 붙이려고 하지는 않을까? 누가 어떻게 해법을 찾을 건지, 과연 신경은 쓰고 있는 건지.. 병원을 방문하고 뉴스에서 가슴이 쿵하는 소식을 확인할 때마다 묻고 싶다. 특히 응급실 뺑뺑이로 대표되는 진료차질 문제가 부각될 때마다 그렇다. 




다급했던 우리 집의 응급실행도 9월 추석이 다가올 쯤이면 어김없이 떠오른다.

당시 추석연휴 끝자락에 5살 딸, 7살 아들을 데리고 어린이대공원 상상나라를 찾았다. 자주 가는 곳인 만큼 아이들은 외부의 놀이터에서 익숙한 몸놀림으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미끄럼틀, 시소, 그네를 타면서 잘 놀았다. 이내 감기 기운에 컨디션이 안 좋던 딸은 놀기를 포기하고 자꾸 내 옆으로 와서 몸을 기댔다. 미열이 느껴져 서둘러 집을 향했다. 저녁거리를 사가지고 갈 생각에 집 근처 대형마트에 들렀는데, 딸이 점점 지쳐가는 게 보였다. 다행히 마트에 소아과가 있어 접수를 하고 대기 중이었다. 소파에서 대기하던 딸의 입에서 갑자기 거품이 일면서 눈이 감기는 순간, 눈앞이 깜깜했다. 진료순서를 무시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병원에서 바로 119를 불렀지만 기다리는 10분 내외의 시간은 식은땀에, 가슴이 쿵쿵거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구급대원이 아이를 안고, 나는 뒤따라 마트를 빠져나와 구급차를 탔다. 난생처음 탄 좁은 구급차에서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아무 일 없을 거야. 괜찮을 거야. 제발..."

딸의 자그마한 손가락 끝을 잡고 속으로 혼잣말을 해댔다. 무서웠다. 그렇게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면...


사이렌을 울리며 정신없이 분당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다행히 응급의학과의 재빠른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큰 병은 아니었고, 갑작스러운 발작증세를 보인 거였다. 며칠간 입원하고, 상태를 지켜보면서 검사를 진행했지만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그 이후 발작증세는 보이지 않고 잘 자라고 있다. 


구급차를 볼 때마다, 사이렌 소리가 울릴 때마다, 운전 중이면 항상 길을 비켜주려고 차 안에서 전후좌우를 살핀다. 보이지 않는 구급차 안의 가족과 환자의 위급함을 몸과 마음으로 느껴봤기에 1초라도 빨리 가게 도와주고 싶다. 속이 까맣게 타 들어간다는 말이 어떤 뜻인지 어렴풋하게나마 알기에 내 선에서 도울 수 있는 건 기꺼이 행동으로 옮기며 살아간다. 한 줄로 길을 내주는 도로 위의 차들을 보면 내 마음이 다 뿌듯하다. 




뼈 스캔은 암 환자의 뼈 전이를 확인하는 검사이다. 방사성 의약품을 정맥에 주사한 후 혈류를 통해 전신에 퍼질 때까지 2-3시간 자유롭게 대기한다. 감마카메라로 10-20분 정도 전신을 촬영하는데 움직이지 않고 차려자세로 잠시 눈을 감고 쉬었다 나오면 된다. 매년 추적 검사로 시행하는데 일반환자의 경우 검사비용이 15만원이다. 키오스크에서 별생각 없이 비용을 확인하니 15만 정도가 나왔다. 산정특례혜택이 끝났음을 실감하면서 약간은 부담스럽게 느껴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검사를 끝내고 갑자기 생각났다. 산정특례연장을 알리는 메시지를 받았던 게 떠올라 수납창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전산상으로는 특례 연장이 자동 업데이트 되지 않아 본인이 알아서 수납할 때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서 연장 덕분에 5% 본인부담인 다시 1만 원대로 비용이 다운되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빼앗겼던 돈을 되찾은 듯, 뿌듯함이 찾아왔다. 이 사태로 인해 "아프지 말자"라는 주문을 외우듯, 하루하루 무사히 지나가기를 바라면서 살아가는데 이렇게 생각지 못한 금전적 혜택을 받게 되니 믿을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편지 않았다. 마음이 불편했다. 괜스레 눈치가 보였다. 10여만 원이 카드에서 빠졌다 들어왔다 하는 것을 보면서 복잡했다. 온갖 생각만으로. 


이런 상황에서는 산정특례혜택이 더 이상 연장되지 않아도 좋으니 

제발, 

다음 달에는 아니 오늘 당장이라도 "해결방안이 나와 마침내 협상이 잘 끝났다"는 모두가 기다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는, 희망적인 굿뉴스가 속보로 들렸으면 좋겠다.


안 아픈 사람은 모른다.

안 당해 본 사람은 모른다.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고 살아가는 사람이 적은 세상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집으로 돌아왔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 우리는 왜 야식 안 먹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